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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5 / 15 SUN
삶을 욕망하는 것의 반대 개념은 죽음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욕망하지 않는 것이지.
에로스가 살아 있는 인간이 품고 행하는 모든 종류의 충동/욕망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타나토스(죽음 충동) 또한 궁극적으로는 에로스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삶과 죽음은 구분할 수 없다.
'우울한 나'와 '즐거운 나'는 상호연속성을 갖지 않는다. 서로의 사고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도, 따라할 수도 없으며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없고 되짚어도 막연할 뿐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는 과거-현재-미래 중 어느 것도 인지할 수 없다. 현재는 인지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과거가 되어버리고, 아니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채 미래의 영역에 남아있다. 즉, 자아는-연속적인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자아의 영원한 소멸/상실이라면 우리는 상실할 것이 없다. 따라서 삶과 죽음은 구분될 수 없으며-연속적이며, '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잘못된 전제 위에 살고 있다. 연속적이다 <-> 단절되었다의 구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닐까. 연속이 단절이고, 단절이 연속이다. '존재한다'는 가정은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0과 ∞의 비이질성 - 분모에 어떤 수가 오든 자신을 지키고, 분자에 어떤 수가 오든 서로가 되고. 존재하지 않는 수 - 무와 무한의 동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