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지극히 현대적인 소란과 미술관에서의 시위. 이어지는 아름다운 필름 슬라이드, 나직한 노을처럼 비추는 조명, 담담하고도 낡게 갈라진 목소리. 타이틀이 뜨기도 전부터 이미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는 걸 예감한 영화다. 그렇게나 지독하게 흐를 줄은 몰랐지만. 이 감상은 결코 말로는 온전히 표현될 수 없겠지. 포스터에 쓰인 말마따나, '어떤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1
사소한 개인들의 휘발성 높은 음성으로 치러지는 투박한 투쟁. 여전히, 그 모든 비극과 무지와 폐허를 목도하고도 여전히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들이 여기에, 지금에 존재한다. 그들의 무기는 시이고 미술이다. 시위는 예술이라는 형식을 띨 수도 있구나. 이들은 예술로써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구나.
2
사회적 사건과 완벽히 맞물려 돌아가는 개인의 역사. 르포와 전기를 오가는 구성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지루할 틈 없이 집중하게 되고, 낸 골딘이라는 예술가와 그녀가 살아온 세상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의 발판을 제공한다.
3
자유롭고 싶었던 여자들. 있는 힘껏 존재하고, 누구보다도 충실히 살아보려 했던 두 자매. 세상은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이들에게 유독 가혹하다. 그들-이때 내가 일컫는 '세상'은 복수형이므로-은 유일무이해지고자 하는 존재를 두려워한다.
낸 골딘이 언니의 상담일지를 읽었을 때, 그때 바바라는 비로소 시체도 기억도 아닌 완결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은 결코 잊힐 수 없다.
4
모든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다. 옥시코돈 복용을 원인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이들도, 대중의 피 위해 군림해 온 새클러 일가도.
공판이 화상으로 이루어지는 걸 보며 : 아, 이게 채 몇 년도 되지 않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구나. 그 어떤 뉴스보다도 선명하게 와닿았다.
새클러 가문의 두 사람이 얼굴을 비쳤는데, 이목구비도 표정도 옷도 하물며 그들 뒤의 배경조차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그게 내게는 새삼 충격이었고. 그래, 저들은 무슨 신이나 악마 따위가 아니다. 숨 쉬고 죽는 인간이다. 그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해석할 수 없다. 긴장? 멸시? 죄의식? 적의? 수치? 분노? 후회? 어쨌건 거기엔 감정이 있었다.
5
우리나라에서 시위가 갖는 이미지란 어떤가. 대체로 광화문에 몰려들어 온갖 소음을 빚어내는 무슨무슨 부대를 가장 먼저 떠올릴 테지. 그들의 탓일까, 빼앗긴 자들의 몸짓조차 유난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현장에서 동조하는 목소리, 그런 건 이 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다. 개인이 모여 세상을 거스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저들의 역사에서 기인한 것일까. 서구사회가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대상이 무엇이든 우열을 가리는 일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시위'라는 개념에 대한, 사회의 기능과 그 안에서 개인의 역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하다고 생각한다.
6
낸 골딘의 사진 속 괴짜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선구자들이자 반항아들, 변두리를 맴도는 이방인들은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영화를 함께 봐준 친구 J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자신을 불사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열정,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게 하는 숙명. 우리는 그런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영원히 찾을 수 없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