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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Mar 22. 2022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나이트메어 앨리


*스포일러 주의!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누구나 한 번쯤 실현 불가능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꿈을 꿔봤을 것이다. 내 경우엔 엘리베이터다. 아파트 단지는 흉흉하게 불그스름한 빛에 잠겼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층 버튼을 누른다. 끼이익, 불길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내 추락하는지 발사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오르내리며 층수가 미친 듯이 뒤섞인다. 4층, 17층, 21층, 8층, 76층, 32층... 모서리에 꼭 붙어 안전봉을 움켜쥐고 덜덜 떤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서서히 문이 열린다. 이런, 내가 탔던 바로 그 층이다.

    악몽을 꾸는 날이면 나는 밤새도록 끙끙대며 같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올라타고, 또 올라탄다. 타다 타다 지쳐 비상계단으로 달려가 봤자 결과는 똑같다. 절대 처음의 그 층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악몽의 미학은 어쩌면 이 지점에 있다. 자유의지 따위는 무시된 채 끝없이 반복되는 굴레. 시시포스의 저주가 우리의 밤을 악몽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 역시 이러한 '악몽의 서사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욕망 가득한 사기꾼의 부정과 몰락을 정직하고, 충실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델 토로 감독의 팬들에겐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괴물 좋아!'를 외치며 온갖 기괴한 형상의 괴수를 등장시키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들로만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아, 정정.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Geek)이라고 해두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내면의 괴물에 잡아먹힌 사기꾼


    <나이트메어 앨리>의 등장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멀쩡한 외형으로 사람들을 홀리지만 내면은 추악한 괴물로 전락해버린 인간들. 둘째, 사회의 변두리에서 기인이라는 이름으로 구경거리 취급받는 인간들. 후자가 '몰리(by 루니 마라)'로 대표되는, 특이한 외모 혹은 재주를 지녔으나 내면은 똑같이 평범한 인간인 카니발 단원들이라면, 주인공인 스탠턴(a.k.a.스탠, by 브래들리 쿠퍼)은 명백하게도 전자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나름대로 순수했던 그 시절.jpg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탠턴은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정신과 의사 '릴리스(by 케이트 블란쳇)'의 권유로 위스키 잔을 입에 대고 만, 바로 그 순간부터 그의 파멸은 선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탠의 진술에 의하면 아버지는 그가 10살 때 술을 끊었다. 그전까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겠거니, 어렵지 않게 추론해낼 수 있다. 아들이 절대 닮고 싶지 않다며 치를 떨던 술에 대한 의존을 아버지는 어떻게 단칼에 끊어냈을까? 이 지점에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스탠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상습적으로 부인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10살의 어느 날 그 폭력으로 인해 스탠은 어머니를 잃었다. 그의 어머니가 사망했는지, 바람피우던 남자 친구와 도망쳤는지는 명시되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 이후로 스탠에게 어머니가 부재했음은 확실하다.

    폭력,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되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스탠의 첫 살인으로 이어진다. 임종 직전에 아버지를 얼어 죽게 만든 이 소극적 존속살해 이후, 스탠은 살던 집에 불을 지르고 고향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카니발에 일꾼으로 합류하고,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기술을 연마하고, 사랑하는 여인 몰리와 뉴욕으로 떠나 자신의 독심술 쇼를 론칭하고, 부자들을 상대로 심령술사 행세를 하는 동안 증오심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확장된다.

    다시 말해, 스탠은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남성들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모조리 살해한다. 술과 약의 유혹에 넘어가 서커스단에서 짐승과 같이 갇혀있던 기인은 스탠에게 과잉진압당했고, 그 과정에서 입은 머리의 상처가 덧나 병원 앞에 버려졌다. 안 봐도 뻔하다. 몇 시간 더 못 살고 죽었겠지. 스탠이 누려보지 못했을 따뜻한 부성의 표상이자 심리적 기술을 가르쳐준 스승인 '피트(by 데이비드 스트라탄)'는 스탠의 실수로 (과연 실수였을까?) 매일 밤 마시던 술 대신 비슷한 병에 담긴 화학 약품을 마시고 죽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기인과 피트가 아버지의 알코올 의존증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이었다면, 스탠에게 살해당한 마지막 피해자이자 그의 가짜 심령술에 놀아난 '그린들(by 리처드 젠킨스)'는 폭력성을 상기하는 대상이다. 인간의 탈을 쓴 또 하나의 괴물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앞선 피해자들이 자기 파괴적이고 욕구 조절에 문제는 있어도 동정할 만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쪽은 솔직히 자업자득이다. 그린들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한 이후, 몰리의 뺨을 치는 순간 스탠은 이성을 잃고 이 음침한 갑부의 숨이 멎을 때까지 얼굴에 주먹질을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살인은 이전까지의 살인들과는 달리 완전히 고의적이고, 과정과 결과 모두 스탠의 눈앞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스탠 스스로가 (관람객은 이미 옛날 옛적에 눈치챈) 자기 인간성의 상실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결국 '나는 아버지 같은 괴물이 아니다', 평생을 되뇌어왔을 스탠턴은 아버지와 똑같이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하고, 사랑했던 여인을 잃고, 괴물의 역사를 반복하며 예정된 몰락을 충실히 이행한다. 자기 아버지를 살해하게 될 거라는 예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처럼. 그 옛날 자신이 동정하고 혐오했던 기인(geek)으로서의 삶을 울며 겨자 먹기로, 통탄과 해탈의 웃음을 터뜨리며 받아들이는 스탠의 모습. 브래들리 쿠퍼가 신들린 연기로 소화한 이 수미상관식 결말은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의 작법으로 빚어낸 밀도 높은 데자뷔이자,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의 굴레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뻔하긴 해도 임팩트는 있었다. 그래도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은 좀 너무 갔다.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괴물이 된 박사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카리스마로 세계도 제패할 것 같은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심리 상담사, 릴리스의 뒷이야기를 파헤쳐 보자. 릴리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머릿속에 떠올랐던 말이 있다. Power complex. (영어 사전에 검색하면 '전력 복합' 따위의 이상한 말로 번역해주므로...) 대충 권력(힘)에 집착한다는 얘기다. 스탠과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릴리스는 'Dr.(박사, 의사)'라는 자신의 호칭을 강조한다. 여기서 알아둬야 할 건, 우리나라와는 달리 서구권에서는 박사 학위를 따고자 하는 수요도 많지 않거니와 수요가 있다 해도 그 난이도가 별따기에 맞먹기 때문에, 닥터라는 호칭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문화권에 비해) 극히 적고 따라서 매우 존경받는 지위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미스터도 예의 바른 표현인데 닥터 스트레인지가 미스터로 불리면 짜증 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1900년대 중반이면 여성은 대학에 가기도 어려웠을 텐데 박사라니, 릴리스의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실제로도 대단히 유능한 사람일 것이고.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나 첫 만남에서, 스탠은 이토록 고고한 릴리스의 자존심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뭉개버린다. 스탠이 간파했듯이 릴리스는 '대단히 훌륭한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박사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 충분히 대접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탠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은, 그녀가 들고 다니는 권총은 단순히 위험한 뒷골목을 쏘다니기 위한 호신용도, 힘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짜릿함을 느끼기 위한 장식용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되려, 릴리스의 권총은 그녀의 무력함을 감추기 위한 필사적인 발악이다. 

    그녀가 스탠에게 은밀히 보여준 흉부의 끔찍한 흉터를 기억하시는지? 느닷없이 돌변해서 스탠을 궁지로 몰았을 때, 그래서 스탠에게 전화선으로 목이 졸렸을 때, 달려온 경비원에게 날린 'I will live(이 정도론 안 죽죠, 난 살아남을 거예요)'라는 대사는? 그녀의 방 창문 너머에는 언제나, 언제나 눈이 펑펑 오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셨는가? 릴리스의 상담실을 제외하면, 영화에서 눈이 내리는 시간대는 단 한 번밖에 없다. 바로 그린들이 자신의 연쇄 살인을 고백하는 장면이 포함된 강령술(이라 쓰고 사기극이라 읽는) 시퀀스다. 처음 스탠이 그린들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릴리스는 경고한다. 그는 '불안정하며 위험한 사람'이라고.

(출처 : 네이버 영화)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릴리스가 바로 그린들이 고백한 연쇄 살인의 피해자  하나이자, 생존자라는 것이다. 릴리스의 방 밖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눈은 그녀가 가슴의 흉터를 얻게 된 그날의 기억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어머니와 비교당하며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에 집착하게 됐을 릴리스의 파워 콤플렉스는, 그린들의 폭행으로 인해 한층  심화되었음이 분명하다. 이제 그녀는 누구와 마주해서든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견딜  없게  것이다. 따라서 스탠이 자신을 모욕한 처음의  순간부터 릴리스는 스탠을 향한 복수를 결심했으리라. 얼핏 갑작스럽고 이해할  없는 후반부 릴리스의 태도 변화는 이러한 연유로 개연성을 갖게 된다.


그 외에 흥미로운 지점들


    가장 분량이 많은 두 인물 위주로 글을 전개하기는 했지만,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조연들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흥미로운 캐릭터다. 원작이 워낙 오래된 작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안한다만, 루니 마라가 연기한 몰리가 사랑의 달콤한 농간에 넘어간 순진무구한 여성으로 스탠의 타락을 강조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역시 조금 아쉽다. 더욱이 기예르모 델 토로의 전작들에서 연약해 보이는 여성 캐릭터들이 강단 있게 이뤄낸 업적들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러나 루니 마라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었다. 윌렘 대포와 토니 콜렛 역시 묵직하게 극의 균형을 잡아준다.

    세트는 또 어떤가. 백여 년 전의 서커스를 완벽하게 재현한 미장센은 배우들도 익히 극찬한 부분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특유의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어둡고 기괴한 비주얼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눈'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서커스 단장인 '클렘(by 윌렘 대포)'이 수집하는 태아 표본의 이마에 박힌 기형의 눈, 스탠이 기인을 찾으러 들어간 카니발 귀신의 집(?)을 장식하는 수십 개의 눈, 뉴욕에서 성공한 스탠이 독심술 쇼에서 착용하는 눈가리개의 눈 모양 자수까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뭐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수많은 눈들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상징이 아닐까 한다. 인도 신화의 주요 신 중 하나인 파괴의 신 시바도 이마에 제3의 눈을 갖고 있다. 어쩐지 인간의 것이 아닌 듯 기이한 눈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의 수레바퀴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굴러 떨어진다.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의 굴레다.


단 한 마디 고전적인 플롯을 고전적으로 연출한, 새로운 고전의 반열에 들 만한 수작. 그래도 차기작은 기예르모 델 토로 특유의 판타지 한 스푼 섞은 잔혹동화로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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