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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Mar 16. 2022

예일대 출신 엘리트가 말 타는 자연인이 된 건에 관하여

파워 오브 도그


*스포일러 주의!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나는 이 영화가 사랑 영화인 줄 알았다


따져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출처 : 네이버 영화)

    솔직히 나만 그랬다고? 혼란을 주는 것이 홍보 담당자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의 한 수가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저놈의 줄거리 설명 때문에, 초반에는 '필(by 베네딕트 컴버배치)'과 '로즈(by 커스틴 던스트)' 사이의 날 서린 긴장감에, 중반부부터는 필과 '피터(by 코디 스밋맥피)'의 아슬아슬한 감정선에 온 주의를 기울이며 두 시간을 보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시작될 때의 그 당혹감이란 : 이거 사랑 영화 아니잖아! 그래도 한 가지는 인정한다. 장르가 로맨스라고 착각하지 않았대도, 별반 다를 바 없이 당황했을 것이라고. 그만큼 <파워 오브 도그>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가령, 이 영화를 어떤 장르로 분류해야 하는가? 로맨스가 아니라는 건 이미 몇 번이나 언급했고. 드라마라 하기엔 스릴이 넘친다. 그렇다고 미스터리 살인극이라 하기에, 살인의 계획과 실행은 극소한 분량만을 차지한다. 되려 감독은 줄곧 필이라는 인물에게 집요히 초점을 맞추고, 그를 묘사하는 데에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 두 시간 동안 화면을 가득 메우면서 속시원히 수다를 떨어주지도 않는 이 과묵한 남자 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시대가 1900년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필은 마초이즘에 매몰된 구세대적 남성이다. 가죽바지, 웨스턴 부츠, 거칠고 위압적인 성정에 종종 성냥 한 개비를 잘근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카우보이의 전형.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예일대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엘리트이며, 밴조를 곧잘 연주하는 풍류가다. 그 나이 먹고도 남동생 '조지(by 제시 플레먼스)'와 한 침대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거의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덤으로, 조지가 집이라도 비우는 날이면 필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무엇보다도 그는 다른 카우보이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에서 비밀스러운 그림자를 찾아내 감상하고 유희하는 취미를 가졌다. 한 마디로, 필은 매우 복잡한 남자다.


복잡한 남자의 비밀스러운 아지트


    영화가 전개될수록 관객들은 필이 전형적인 마초 카우보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토록 양면적인 특성들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가? 그 답은 어쩌면 필의 외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그는 명령하고, 군림하고, 조롱하며, 억압한다. 그러나 홀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특유의 섬세한 표정 연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표현함으로써 필의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강인해 보이는 외면과 달리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연약한 그의 내면을.

(출처 : 영화 포스터 中 일부)

    그 외로움은 아마도 필이 거의 숭배하는 그와 조지의 멘토, '브롱코 헨리'의 상실에서 기인한 것이다. 자신을 꽁꽁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필이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유로워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는 바로 그만이 아는 비밀의 호수이다. 이 호숫가 근처의 나무에 숨겨놓은 (피터가 필을 몰래 따라와 발견하는) 사진집을 통해 관객은 필이 동성애자이며, 브롱코를 단순히 동경한 것이 아니라 사랑한 것임을 명백히 알게 된다.

    이 호수에서 이루어지는 필의 의식-이라고 부를 만한 일련의 세신 행위-은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이리라.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온몸에 진흙을 바른 뒤 다시 씻어내는 필의 모습은, 자연에 순응하고 그와 하나 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제 손으로 자신을 더럽힌 뒤 다시 경건하게 정화하는 속죄를 행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비밀의 공간은 외부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필의 본능과 정체성, 즉 섬세하고 유약한 동성애자인 그의 본모습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문제 되지도 않는 유일한 곳이다.

    따라서 필 외에는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이 공간에 침입한 피터의 존재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필에게는 센세이션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피터는 광활한 산맥에서 울부짖는 개의 그림자를 한눈에 발견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브롱코 헨리가 가르쳐주기 전엔 필 자신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그림자를. 피터가 순식간에 브롱코의 빈자리를 메우고, 필이 예기치 않게 그에게 무장을 해제하게 된 것은 따라서 필연이지 않겠는가.


죽음으로 구원을 행하노라


(출처 : 네이버 영화)

    필과는 정반대로, 피터는 유약해 보이는 외모로 아무렇지 않게 토끼를 죽여 그 배를 가르는 차가운 의대생이다. 그의 아버지가 걱정했듯이, 그는 'too strong(지나치게 강인한, 독한)'하다. 그리고 피터는 무자비한 강인함, 쌀쌀맞음을 무기로 필의 살인을 계획하고 착실히 실행에 옮긴다. 탄저균에 감염된 소의 가죽을 채취해 보관해 두었다가 감염이 용이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즉 필의 손에 상처가 났을 때 그에게 죽음의 재료를 쥐여준 것이다. 완전범죄를 저지른 피터가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보는 성경 속 구절은 이 영화의 제목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준다.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단면적으로, 이 문장은 당연히 다음을 의미할 것이다 : 사악한 필(개의 세력)로부터 어머니를 구원하고자 피터가 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 장르라 보기 어려우며, 주인공은 로즈와 피터가 아닌 필이다. 따라서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다음과 같이 짐작해볼 수 있겠다. 피터(구세주)는 어머니를 필로부터 구해낸 동시에, 필을 브롱코 헨리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했다고. 죽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말이다.

    필은 브롱코의 상실과, 누구에게도 진실한 내면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기인한 고독으로 고통받았고, 그래서 드높게 쌓아 올린 장벽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피터에게 마음을 열었고, 탄저균에 감염되어 열이 펄펄 끓는데도 앓는 소리 한 번 없이, 저항의 몸짓 하나 없이 쉬이 죽음에 굴복했다. 울부짖는 개의 그림자를 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브롱코 헨리의 영향 (혹은 세력) 아래 있음으로 인한 지난 수십 년 간의 내밀한 고통을 끝낼 기회를 받아들인 것이다. 많은 이의 심기를 거스르고 많은 이에게 상처를 준 천하의 악인이자, 한편으로는 부하들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가족들에겐 그래도 사랑하는 장남이었던 필. 운명의 저울은 그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달았으며, 동시에 그가 인 짐의 무게도 달았다. 그리고 그 벌이자 구원으로서 죽음이라는 결과를 산정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죽음을 제 손으로 친히 행한 피터는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 옳을까? 단순한 살인자? 필의 영혼을 칼에서 건져내고, 자신의 유일한 것인 로즈를 개의 세력에서 구해낸 구세주? 필과 피터가 그들의 멘토에게서 들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되새겨보면, 두 사람의 내외적 행보가 어떤 감정과 신념을 바탕으로, 얼마나 다르게 전개되어 왔는지, 전개되어 갈지를 짐작할 수 있어 흥미롭다. 필은 인간의 운명이란 '불행을 견디면서' 지속되는 것이라 배웠고, 피터는 '장애물을 없애가는 게 인생'이라고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피터는  다른 개의 세력일지도 모른다. 가르침 없이도 거대한 개의 그림자를 발견해낸 피터, 필의 감정을 능숙하게 읽어내고 이용해 필이라는 장애물을 손쉽게 치워버린 피터, 스무 살에 이미 냉혈한 소시오패스로서  범죄를 저지른 피터도, 결국 미래에 누군가-장애물-에게 '개의 세력' 뻗치게 되지 않을까.


단 한 마디 <브라이트 스타> 이후 두 번째로 접한 제인 캠피온의 작품. 이 감독 참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흉터처럼 깊게 새겨지는 여운을 만들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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