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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Sep 12. 2023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

오펜하이머


*스포일러 주의!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본문은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실화가 아닌, 영화 <오펜하이머>의 허구를 기반으로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치닫고 휘몰아치는 정서 불안의 별, 혹은 미세한 입자들. 선뜻 날아와 박히는 푸른 시선. 천재적 재능을 품은 한 물리학도가 보고 듣는 세상은 이토록 신비롭고 혼란스러우며, 위태롭지만 아름답다.

20대 청년부터 완연한 노인의 얼굴까지, 미세한 분위기 차이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 킬리언 머피 (출처 : IMDb)

    

영화적 큐비즘(Cubism), 피카소의 선으로 그은 어느 과학자의 초상


    쿵, 쿵, 쿵, 쿵. 영화 <오펜하이머>는 폭발음 같기도, 심장의 초조한 박동 같기도 한 타격음의 반복과 함께 시작된다. 그 소리의 끝에서 번쩍, 눈을 뜨는 것은 피곤한 얼굴로 지난 삶을 송두리째 취조당하고 있는 중년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by 킬리언 머피)'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 오펜하이머라는 이름보다 어쩌면 더 잘 알려진 그 수식어는 두 개의 상반된 관점을 낳는다. 그는 세상의 구원자인가, 혹은 파괴자인가. 그는 탐구에의 순수한 열망에 가득 찬 학자인가, 사람을 조종하는 데 타고난 재능을 지닌 소시오패스인가.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양자 역학적 관점에서 조명하겠다는 가히 천재적인 발상으로부터 이 영화를 출발시킨다. 슈뢰딩거의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그 안의 고양이는 살아있으며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이듯, 두 눈으로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목도하지 못한 우리 미래의 사람들에게 그는 상반된 성격들이 중첩된 인물이다. 유려한 영화적 언어로 축조된 이 인물 탐구의 방법론은 아마 죽은 자에 대한 가장 완전에 근접한 묘사이자 마땅한 예우가 아닐까.


폭발은 창조의 어머니
(출처 : IMDb / 네이버 영화)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의 구성 또한 양자 역학과 핵폭발이라는 소재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원자폭탄의 핵이 분열을 통해, 수소폭탄의 핵이 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발생시키듯, 컬러 화면-오펜하이머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현재에서 미래로 가지를 뻗어나가고, 흑백 화면-스트로스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모여든다. 장면들은 짧은 단위로 순환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토록 격렬하게 발산하고 수렴하는 서사가 귀결되는 지점, 즉 폭발점은, '죽음' 그 자체로 거듭난 오펜하이머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익히 알려진 놀란의 고집대로 CG 없이 촬영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핵폭발 장면은 (예상을 깨부수고) 극히 고요하게 묘사된다. 거리가 머니 폭발음이 당도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극도로 적막한 폭발이라니, 상당히 도전적인 연출임이 틀림없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침묵하는 섬광이 천지를 가득 메우고,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강렬한 그 빛을 바라보는 오펜하이머의 옆얼굴은 예술가의 그것과 뚜렷하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비단 이 장면뿐만이 아니라 영화 내내, 미국 전역의 뛰어난 (물리)학자들이 나누는 대화의 뉘앙스에서 연상되는 것은 빼곡히 책이 쌓인 도서관의 정밀함과 고루함보다는, 열정과 혁신, 그리고 (때때로 과할 정도의) 개성으로 대표되는 예술가적 태도다. 고도로 발달한 재능, 즉 천재성이란 어쩌면 분야나 경계에 상관없이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천재들은, 그들의 재능이 어디에 쓰이건 간에, 전부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가이고 창조자인 것이다.

    따라서 인류가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하는 건, 창조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초의 무한한 절대자로부터 그와 똑 닮은 우리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소수의 동족이 지닌 창조성에 경이를 느낀 인간들이 비로소 신이라는 개념을 착안해 낸 것이다. 축복과 저주를 안고 태어난 이 불행한 천재들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타오르는 불꽃에 모두가 속절없이 매료되고 경도되었다. 그렇게 오펜하이머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아니 어떻게 CG 없이 찍었냐고..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출처 : 네이버 영화)


고독한 천재 - 여전히 유효한 낭만주의적 환상
이 영화 본 사람들은 이제 사진만 봐도 숨이 찰 걸 (출처 : 네이버 영화)

    최초의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고, 오펜하이머는 그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앞의 작은 연설대에 선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며 계속해서 그의 마음을 어지럽혀 온  반복적인 소리의 정체가 밝혀진다. 수십 개의 구두굽이 바닥과 충돌하는 소음은, 폭발처럼 먹먹하게 고막을 때린다. 기쁨에 찬 환호 혹은 고통에 휩쓸린 비명, 황홀한 탄성 혹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의 절규. 술에 취해 자전거 옆에서 구토하는 젊은이는 얼핏 방사능에 피폭된 히로시마의 민간인처럼도 보인다. 정신이 아득하게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오펜하이머가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공황 발작의 시각화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이 장면을 통해 놀란은 오펜하이머의 죄의식과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그려 낸다. 바로 그 소강당의 환청에 여전히 시달리는 오펜하이머가 파르르 눈을 감으면, 치밀한 수미상관과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출처 : GQ)

    <인터스텔라>가장 진한 농도의 슬픔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오펜하이머>가장 근원적인 좌절, 가장 밑바닥의 고독을 다루는 영화다. 누군가 놀란이 어떤 감독이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인터스텔라>, <인셉션>, 그리고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추천할 것이다. 그러나 놀란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싶다면, 거장의 심원한 내면을 이해하고 싶다면, <오펜하이머>야말로 가장 먼저 봐야 할 영화가 아닐까.

    각본을 1인칭으로 집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란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에게 깊이 이입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균형을 깨트리고 비대해질 수 있었던 인물을, 킬리언 머피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거대하지만 안정적인 존재감으로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놀란이 오랜 세월 애착(?) 배우로 삼았던 머피를 마침내 전면에 내세운 작품인 만큼 시네필들의 기대감도 만만치 않았을 터. 그 기대를 가뿐히 능가해 버린 이 눈부신 배우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정해진 것 같은데?


단 한 마디 태양빛 적막, 무채도의 소란.


* 크리스토퍼 놀란의 미시적 세계가 흥미로웠다면, 이번에는 거시적 세계로 : 이 영화 볼 때마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 다안의 영화 이야기가 더 듣고 싶다면 : 다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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