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나고도 애틋한 연인의 결말은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정해졌다. 명백하게도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희연 씨의 동생, Y대에 다니는 남학생의 말 한마디가 계기였다. 기계공학과였던 그는 벤의 이름과 얼굴을 알았다. 정식 교수도 아닌 시간제 강사가 어떻게 타과생에게도 친숙한 저명인사가 되었을까? 정답은 벤이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 외의 세계에는 철저히 무관심해서다. 쉽게 말해 벤은 은호와의 관계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런 행동 강령이 선택지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위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벤은 은호를 사랑했으니까.
그러나 벤의 그런 태도는 정당성과는 관계없이 논란거리가 되었다. 더 악질적으로는 가십거리가 되었다. 그 논란과 가십이야말로 정당성 따윈 개나 줘버린 헛짓거리였으나, 그런 지적을 귀 기울여 들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다음 얘기는 뻔하다. 제 출처를 밝힐 생각 없는 혼탁한 소문과 누나의 남자친구가 화제의 교수라는 걸 알아본 남학생, 오랫동안 부를 유지해 온 집안이 으레 그렇듯이 보수적인 희연 씨의 가족들. 사실 웬만큼 개방적인 부모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기 힘들었겠지만. 그래서 희연 씨는 그만두기로 했고, 벤은 그 결정을 존중했다. 지긋지긋한 얘기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더없이 간략했던 연애 이후, 벤은 눈에 띄게 잠잠해졌다. 앞으로 얼마간 이 상태가 유지될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게 분명해 보였다. 난 그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그만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내심 기쁘면서도, 사랑에 빠졌을 때의 그가 얼마나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는지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정작 그 자신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벤은 언제나처럼 가만히 서서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도록 내버려 뒀다. 어떠한 호의나 거절도 없이.
Le garçon de rose. 그의 얼굴은 새벽처럼 여운을 남겼다. 장미가 겨우내 머금고 있던 꽃봉오리를 터뜨리듯이, 쏟아지는 유성이 밤하늘에 길게 떠나는 자국을 그리듯이. 그리고 그는 완벽하게 불행했다.
La misère arriva soudain dans sa vie. 불행은 갑작스럽게 그의 삶에 도달했다. Un malheur ne vient jamais seul.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았다.
춥고 더러운 도시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진 몸을 팔 하나로 힘겹게 지탱하며 물구나무서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대충 뚜껑을 뜯어낸 녹슨 깡통이 놓여 있었는데, 간혹 무심한 얼굴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동전을 던져 넣으며 지나갔다. 대체로 도시의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 집값 떨어지게.
- 추하잖아요.
- 에비, 지지야 지지!
그는 곡예사였다. 그러나 원해서 묘기를 부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토록 지쳐 있던 것도 아니었다. 갓 태어났을 때, 장미처럼 부드럽고 발그스레한 그의 뺨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어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 이 아기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게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어요!
그건 예견된 미래이자 그의 사명이었고, 반드시 태양이 뜨듯 절대로 바뀌지 않을 진리였다.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신앙은 으레 아이에게 유전된다.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