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에게 여름은 상실의 계절이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희연이 그를 떠나기 전, 열일곱 벤은 처음 느낀 사랑을 무참히 빼앗겼고, 그보다 훨씬 오래전 그가 여섯 살이 되던 해의 여름이었다. 벤에게는 누나가 있었다. 있‘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가 누나를 영원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벤과 누나는 사이가 좋았다. 아직은 형제간에 치고받고 싸울 만한 나이가 아니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유난히. 아마 벤이 그렇듯이 그의 누나도 다정한 천성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벤은 누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나보다 한 살 많고, 새처럼 높은 소리로 웃었던 것 같아. 그 외에는 모르겠어.”
그가 종이에 바로 옮겨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 하나는 때가 하나도 타지 않은 하얀 신발 한 쌍.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신발을 신고 있던 누나의 작은 발이었다.
“아마 새 신발이었겠지? 아이들의 신발은 금방 더러워지니까. 매듭이 완벽한 리본 모양으로 묶여 있었어.”
여름 해를 받아 형광펜처럼 발광하던 작은 운동화. 그는 또 매미 소리를 기억했다. 몸통 안의 얇은 막을 있는 힘껏 떨어대며 내지르는 필사적인 외침을.
지독하게 고막을 파고드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버거웠던 어린 벤은 두 손바닥으로 세게 귀를 누른다. 먹먹함 사이로 꾸역꾸역 침투해 온 날카로운 비명에 집중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는 땅에 붙어 기는 작은 벌레를 보고 있다. 애벌레? 송충이? 꿈틀거리는 초록색의 작은 원통형이다. 벌레는 더위에 바싹 말라 거의 죽은 것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쪼그려 앉아 있었던 것 같아. 바닥이 굉장히 가까웠거든. 내 발도 아주 가까이에 있었고.”
시야의 끝에는 누나의 꼬까신이 걸려 팔랑팔랑 계속해서 선 자리를 바꾼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누나의 손이 머리카락을 스친 것 같아 벤은 얼굴을 든다.
누나는 보이지 않는다.
벤은 여전히 손을 귀에서 떼지 않은 채로 일어나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어느 방향에서도 누나를 찾을 수 없다. 벤은 더 큰 소리로 누나를 부르기 위해 두 손을 입 옆에 가져다 댄다. 사그라지지 않는 매미 소리가 그를 향한 야만적인 공격처럼 느껴진다.
누나, 누나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 내가 술래인가? 더워서 숨이 차지만 누나가 하고 싶은 놀이라면 나도 같이 할래. 벤은 모든 담벼락 너머와 모든 수풀 속과 모든 가로수 뒤를 향해 잰걸음으로 뛴다.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모든 구석에 빼꼼 고개를 들이민다. 어린아이는 수를 세는 게 서투르니까 그가 빠트린 곳이 있을지도 몰랐다. 벤은 가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그 어딘가에 아직도 어린 누나가 꼬깃꼬깃 구겨져 앉아, 숨죽여 웃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여섯 살의 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잘 몰랐다. 외울 필요가 없었다. 그냥 누나의 뒤꿈치를 쫓아가면 됐으니까. 그는 한참을 돌고 돌아, 숱한 모험과 사투 끝에 어찌어찌 집을 찾아낸다. 혹은 아이들이 저녁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니던 부모님이 공터를 헤매던 어린 아들을 발견한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벤은 말했다. 그가 아는 건, 그를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리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다. 엄마 아빠가 운다. 이상해. 무서워. 울지 마. 뭐가 서러운지도 모르고 덩달아 눈물이 솟는다. 그리고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늦은 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미약한 불빛이 아이의 잠을 방해한다. 침대에서 사뿐히 뛰어내린 벤은 눈을 비비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연다.
플로어 스탠드 하나만 외로이 켜진 거실. 한 쌍의 그림자가 덜 마른 빨래처럼 소파 위에 널려 있다. 작은 틈새에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벤은 입속으로 속삭여본다. 졸려, 왜 안 자? 누나는 왜 안 와?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벤도 입을 열지 않는다. 어린아이 하나가 앉을 만큼 띄워진 간격. 목적 없는 시선이 서로를 비껴간다. 협탁 아래로, 바닥을 가로질러 기다란 꼬리를 늘어뜨린 고풍스러운 외관의 전화기는 언제까지나 잠잠하다.
벤은 조용히 문을 닫고 침대로 돌아가 눕는다. 엄마와 아빠는 오밤중에 무슨 전화를 기다리는 걸까? 작은 머리가 바삐 움직인들 해독할 수 없는 장면이다. 어쩐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밤중에 자지 않고 깨어있는 건 나빠. 들키지 말아야지, 비밀을 지켜야지. 천장에 달라붙어 힘없이 반짝이는 별들이 짓누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