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실종된 이듬해 여름, 벤은 부모님과 함께 지구 반대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에 남기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창가 자리는 물론 벤의 차지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날며, 벤은 시시하다고 생각한다. 만화에 나오는 괴물보다 커다란 비행기는 그다지 빠르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새처럼 날개를 휘젓지도 않았고, 쉬지 않고 웅웅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래도 이불처럼 폭신하게 깔린 구름 위를 나는 건 기분 좋았다. 점점 작아지는 도시를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조그마한 도시는 꼭 크리스마스에 트리 아래를 장식하는 장난감 같았다. 아니, 트리에 칭칭 휘감는 꼬마전구들의 대규모 합창 같았다. 벤은 창문에 이마를 붙인 채로 어렴풋이 생각한다. 누나도 이걸 보면 나랑 똑같이 말할 거야.
그에게 상실은 그런 거였다. 누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 때, 누나의 손을 잡고 싶을 때, 대답과 감촉과 그에게 지어주는 미소가 오로지 눈꺼풀 안쪽에만 존재하는 것. 그는 언제고 눈을 감고 누나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응당 그의 것이었어야 할 다정함은 파편으로 흩어져 채 기록되지 못한 장면을 불러올 수는 없다. 이미 저장된 기억들은 닳고 닳아 그가 원치 않아도 너덜너덜해져 간다. 나머지는 영원히 정답을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하염없이 상상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날 새벽 그림 속 곡예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멈추고 잠든 나는 벤의 세 연인이 모조리 등장해 그를 산산조각 내려고 덤벼드는 꿈을 꿨다. 토막 나 던져진 일부들이 더는 그가 아니게 될까 봐 달음박질치는 말에 탄 기수처럼 온몸이 세차게 떨렸지만, 동시에 벤은 아주 강하니까 그들을 모두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믿었다.
그러나 벤은 갈기갈기 조각나거나 초인적인 힘으로 세 사람을 던져버리는 대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뻗은 나무로 변신해 집요하게 땅에 뿌리를 박아 내렸다. 그의 갈라진 껍질을 어루만지며 나는 서늘한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나무는, 어린아이가 사탕을 감춘 주먹을 뻗듯 살그마니 작은 가지를 내밀었다.
그 끄트머리에서 장미 봉오리가 퐁, 하고 솟아올랐다. 마치 아이의 미소처럼, 장미는 천천히 꽃잎을 펼쳐 보이며 피어났다. 내가 미처 향기를 맡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융단처럼 풍요로운 붉은색을 구경하는 동안, 만개한 꽃은 빠르게 시들어 흔적도 없이 바스라졌다.
걸음마를 겨우 떼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유일하게 바라온 것은 별이 총총히 펼쳐진 밤하늘을 영원히 비행하는 것이었다. 그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호수를 이룰 정도로 깊었다. 그가 한 치 의심도 없이 그저 날고 싶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숲속의 작은 절벽에서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두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 그는 자신에게 날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꿈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때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사라졌다. 허전한 곳 위의 피부를 문질러 보았지만, 무엇이 없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부족한 게 뭔지 모르는 채로 그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의 몸은 양분을 충분히 받지 못한 나무처럼 가느다란 대신 매우 유연했고, 아름다웠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무용을 배웠으나 곧 그만뒀다. 무대에 서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의 선생은 몇 번이고 그를 붙잡았는데, 본능적으로 그가 돈이 될 만한 무용수라는 걸 알아봐서였다.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