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도시의 말 (22)

by 다안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K대 불문과 최선 교수와 가벼운 면담 중이었다. 학부는 올해 초에 이미 졸업했으니, 구태여 구분하자면 나의 일방적인 방문이었지만.

“유학은 아직도 생각 없니?”

“네,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시피.”

“난 갔으면 좋겠다. 너한테는 학자로서의 가능성이 분명히 있어.”

“대학원은 갈 거예요. 아마도. 겨울까지는 쉬고요. 지도교수 해 주실 거죠?”

교수님은 한숨을 쉬며 안경을 살짝 올렸다.

“그거랑 같니? 그래도 기왕 불문학을 전공하려면 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는 게 좋지. 비용 때문에 그래? 대학원 유학은, 특히 프랑스는 등록금도 저렴하고 장학금 제도 잘 돼 있는 거 알잖아. 그래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면, 옳지, 마침 네 조건이 다음 학기에 진행하는 석박사 학업 지원 프로그램에 딱 맞는데. 어디 보자, 이게 주거비랑 생활비도 상당 부분 지원하는 거라. 넌 성적도 좋고, 작성할 서류도 아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말하는 교수님의 구두 밑창이 바닥을 몇 번 스쳤다. 입시 결과가 실적으로 곧장 이어지는 고 3 담임이라면 모를까, 그 많은 학생 중 하나에게 이렇게나 신경 써 주는 대학 교수가 어디에 또 있단 말이야. 난 최면처럼 두드리는 리듬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교수님.”

“음?”

“제가 또 중간에 내빼면 어쩌시려고요. 저 부자 아니에요. 수틀리면 뱉어낼 돈도 없어요.”

어정쩡하게 멎은 발이 곧 자리를 가다듬었다. 교수님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등을 곧게 펴며 입을 다시 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뭐 하나 물어보자.”

“하문하시지요.”

“너 파리로 교환학생 갔을 때 말이다. 애초의 예정과 다르게 서둘러 귀국한 이유가 교내에서 발생한 어떤 부당한, 혹은 부적절한 상황 때문이라면… 민감한 사안일 수 있겠지만, 그런 문제는 추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파견 학교 측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필요가 있고, 그러니까…”

조리 없이 이어지는 말에서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걱정 마세요, 교수님. 그런 거 아니에요. 학교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 그냥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 건강이 조금 안 좋아져서.”

거짓말은 아니지. 건조한 손이 손목에 가볍게 얹어진다. 걱정스러운 눈. 나보다 적어도 스무 살은 많은 남자의 불필요한 접촉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저런, 지금은 괜찮고?”

10년 후의 벤이라면 가능할지도… 아니, 그는 친밀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성격은 못 된다. 손을 포개기는커녕 눈을 잘 맞추려 들지도 않을걸.

“네, 문제없어요.”

나는 팔을 들어 올리며 튼튼하다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 안심했는지, 교수님은 등받이에 편안하게 기대앉아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 별일 없었다면 다행이다. 다른 대륙에 있어야 할 애가 학기 중에 오늘내일하는 몰골로 교정에 나타났을 때 어찌나 놀랐던지.”

“오늘내일하는 몰골이라뇨? 말씀이 좀 심하신데요.”

“이 녀석아, 나뿐만 아니라 그때 우리 과 교수들이 다 얼마나 걱정했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제대로 된 절차도 언질도 없이 무작정 귀국해서 과 사무실이고 행정실이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데, 며칠째 똑같은 옷에, 눈 밑은 시커멓고, 안 그래도 작은 게 더 작아져서는…”

교수님은 주먹밥을 만드는 것처럼 손안의 공기를 뭉치며 말했다. 앙증맞기까지 한 그 동작을 보고 있자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제가 작은 게 아니라 교수님이 크신 게 아닐까요? 저 평균 이상의 키인데요.”

“원래 작은 사람들은 다 자기가 평균이라고 해. 아무튼 우린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어. 이미 돌아와 버렸으니 다시 보낼 수도 없고, 학생 개인사를 꼬치꼬치 캐묻기도 뭐하고. 곤란했지.”

“그러셨구나. 죄송해요.”

“아니,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예의상 건넨 사과에 대한 대답치고는 결연하다.

“그래도 여전히 죄송하다면, 역시 유학을 재고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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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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