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그렇게 제 유학에 집착하시는 거예요? 솔직히 저, 그렇게 성실한 학생도 아니었잖아요? 저보다 성적 좋은 동기들도 많을 텐데.”
“많지는 않아.”
“어쨌든 있기는 있었네요.”
교수님이 팔짱을 끼며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적이 훌륭하다는 이유로 그러는 게 아니야.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지만… 수민이 너, 내 수업을 꽤 여러 개 들었었지.”
“그랬죠.”
“첫 강의에서, 다음 강의에서, 또 다음 강의에서, 마주칠 때마다 너는 눈에 띄었어.”
“제가요? 저 존재감 없는 편인데.”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나는 교탁에 서 있으면 너희 얼굴이 한눈에 다 보이잖니. 너희들은 안 보일 거라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서른 명 정도 되는 애들이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그중 스무 명은 노트북에 얼굴 처박고 타자 치느라 바빠. 지나가면서 슥 보니까, 아주 농담까지 조사 단위로 다 받아적고 있더구만. 입만 열면 한꺼번에 타다다닥, 아주 시끄러워 죽겠어.”
“뭐, 요즘은 다들 필기를 그렇게 하더라고요.”
“나머지 아홉 명은 뭘 할 것 같으니.”
“부족한 수면 보충?”
“잘 아네.”
“저도 그 애들 사이에 앉아 있었으니까.”
“그래. 스물아홉 명은 각자 자기 일하기 바쁜데, 딱 하나, 너만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잖니, 항상 맨 앞줄에 앉아서. 책상엔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 세상에 요즘 어느 20대가 연필을 쓰냐? 나 국민학교 다닐 때나 쓰던 촌스러운 노란 연필을 손에 꼭 쥐고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귀신같이 중요한 내용 읊을 때만 연필이 신명 나게 춤을 추더구나. 눈이 너무 자주 마주쳐서 조금 무서울 지경이었어.”
“그 정도였나요.”
교수님은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듯 턱을 괴고 미소를 지었다.
“너도 누굴 가르쳐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은 말이다, 질문이라는 걸 던질 줄 몰라. 그냥 외우고 말지. 나 참, 문학이 언제부터 암기 과목이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래서 더 네 질문이 기다려졌나 보다. 네가 쓰는 단어, 텍스트를 외부적 요소와 연결 짓는 방식만 봐도, 허투루 꾸며낸 호기심이 아니란 걸 지나가는 개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때까진 네 얼굴만 알고 이름을 몰랐어. 이름 외우는 덴 젬병이라.”
“아, 맞아요. 매번 애들 이름 바꿔서 부르시고, 한두 글자씩 꼭 틀리시고.”
“그걸 굳이 또 지적하는구나.”
“그런데 돌이켜보니 제 이름은 딱히 틀리신 적 없는 것 같네요.”
“그럴 거야. 첫 레포트를 채점할 때 단번에 외웠거든. 한수민 학생. 그땐 우리 과 소속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목이 타는지, 교수님은 티백을 띄운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나도 덩달아 앞에 놓인 손님용 잔으로 한 모금을 마셨다. 캐모마일 향이 노곤하게 콧속에 퍼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교수가 되고 싶었어. 아니, 될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구나.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수셨거든. 그런데 내 동기 중에 너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진로를 다시 고민해 봤을지도 모르겠어. 난 그 나이에 너처럼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게 도전적인 주제를 꼼꼼한 논리와 깔끔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도 없었지. 빈틈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제법 훌륭한 글이었어. 교수인 내가 2학년짜리 학부생의 레포트를 여러 번 다시 읽어볼 정도로 말이야.”
이런 노골적인 칭찬은 어색한데.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괜히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차를 홀짝댔다.
“그러니까, 수민아, 나는 네가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로, 시간 낭비일까 두렵다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당장 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라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이건 알아두거라. 너는 분명히 이 분야에 지대한 흥미를 갖고 있고, 소질도 뛰어나. 네 선생이기 이전에 같은 학문을 공부하는 동료로서, 네 안의 참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숙면에 도움이 되는 차라더니, 맛은 떫네. 사레라도 들렸는지 목이 콱 막혔다.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는 동안 머리가 바삐 굴러갔다.
“글쎄요. 참된 열정이니 뭐니…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전 게으른 사람이라.”
교수님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어색해 시선을 무릎으로 떨어트렸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얼굴들하고 지내는 게 좋죠. K대 석사 정도가 저한테 딱 적당해요. 당장 취업 준비하기는 싫으니까, 살짝 유예하는 김에 머리도 좀 채우고, 네.”
안경 너머로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