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도시의 말 (25)

by 다안

그 과제에서 나는 45점을 받았다. 항목별로 세부 점수가 적힌 답안지를 받아들었을 때는 솔직히 채점이 잘못된 줄 알았다. 아무리 불어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했다고 해도, 나는 그걸 어느 정도는 상쇄할 만큼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했다. 더군다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잘못된 건지 지적하는 코멘트 한 줄마저 없었다. 내 글이… 그 정도로 쓰레기였다고? 나만 점수를 짜게 받은 게 아닌지, 뒤쪽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교수님, 만점자가 몇 명인가요?”

교수님은 사람 좋게 웃으면서 신랄한 답변을 내놨다.

“한 명밖에 없네요. 그것도 타과생인데. 불문과 학생들 기말고사 땐 더 분발해야겠어요.”

난 수업이 끝나면 대체 어느 부분에서 내 논리가 어긋났다고 느끼셨는지 여쭤봐야겠다는 다짐에 한창이었다. 교수님은 심각하게 45라는 숫자를 들여다보는 날 보시더니 흐뭇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한수민 씨는 어쩜 그렇게 글을 조리 있게 써? 국문과라 그런가? 생소한 언어라서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어요. 열심히 해서 학기 말에 좋은 결과 한 번 내봐요.”

나는 시험지에서 고개를 들고 멍청하게 교수님을 쳐다봤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교수님. 50점도 안 준 게 누군데 속 편하게 그런 소리를 하세요?


아하, 45점이 만점인 시험이었다. 총점 100점에 중간고사 45점, 기말고사 45점, 출결 점수 10점을 환산 없이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교수님의 말대로, 나는 그 강의실에서 유일하게 만점을 받은 학생이었다. 그 학기에 배운 시 중에는 랭보의 시가 가장 아름다웠고, 아폴리네르나 말라르메는 전혀 취향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단어에도 성별을 붙인다는 걸 그 강의 때문에 처음 안 내가 모든 시의 거의 모든 단어를 사전에 검색해보며 한 학기를 버틴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난 그분을 좋아했다. 언젠가 벤이 물었었다.

“한, 너는 나보다도 연애를 안 하는 것 같아. 사랑에 휘둘리기 딱 좋은 나이 아니야?”

“별로 관심 없는데.”

“그래?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은 있어?”

어라, 말을 해도 되나 잠시 고민했다. 분명 최선 교수님의 많은 부분에 호의를 품고 있긴 했다. 늘 대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습관, 잔잔한 음성, 시를 읽을 때의 따뜻한 얼굴 모두 기억의 좋은 쪽에 얹기로 분류해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벤이 기대하는 그런 종류의 사랑인가? 하면 그건 확신이 서지 않았다.

“글쎄.”

애매하게 답하는 나에게 벤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뭐, 언젠간 너도 사랑의 존재를 믿을 수 있겠지. 그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였으니까.

“아무튼, 유학은 더 강요하지 않으마. 대신 대학원 원서는 꼭 써라. 팽팽 놀지만 말고.”

“조금만 더 쉴게요. 조만간 오지 말라고 말리셔도 와서 교수님 괴롭힐 거에요.”

최 선. 나는 책상 위 장식 없이 간결한 명패를 눈으로 읽으며 대답했다. 교수님은 더 귀찮게 하지 말고 얼른 가라며 손을 휘휘 저었고, 그렇지 않아도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때문에 급하게 연구실을 빠져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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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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