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탓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생각해보면 너를 이겼던 적이 있었나 싶다
너를 앞질러 뛰어 뒤 돌아봤을 때
숨이 차서 헐떡이는 너를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떠올려보면 너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너를 이겨보지 못했기에
나는 늘 너의 뒤통수만 봤던 것 같다
때때로 나는 너를 이기기 원했고
때때로 나는 너에게 끌려가기를 원했다
나는 그냥 그랬다
왜 이겨야 하는지 모른 채 이겨야 한다고 배웠기에
끌고 가야 한다고 수없이 들었기에
그냥 그래야 했다
아직 걸어갈 네가 많지만 걸어온 너를 생각하면
네가 나에게서 빼앗아간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나에게만 유난히 짧았던 것도
싫은 것을 강요한 적도 없더라
다만 거기에는 네가 있었다.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어
발걸음을 옮긴 것은 나였고
너는 최대한 자갈이 없는 길, 풍경이 아름다운 길로 있었다
미안. 내가 오해했었다. 항상 비가 내리고 있다고 착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