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봐요, 정진호]
평범 그 자체.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은 아이.
평범한데 몸집까지 작고 약해서 더 눈에 띄지 않는 아이.
그게 나였다.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보다 키 큰 연년생 여동생 앞에서 언니 노릇을 하고 싶었고
부모님께는 인정을 받고 싶었지만,
평범하다 못해 부족함 투성이인 나는
인정받기는커녕 늘 좌절했다.
아무도 날 봐주지 않네....
그러면서 나조차 나를 보지 않았다.
늘 다른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고
평범한 나, 부족한 나는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괜찮은 척 나를 무장하고
웃으며 지냈다.
그렇게 나를 잃고 있는 것조차 모른 채.
나는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정진호 그림책, [위를 봐요]에 나오는 주인공, 수지가
꼭 나와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봐달라고'외치지도 못하는 나와는 달리,
수지는 힘차게 외친다.
위를 봐요!
내가 여기 있어요!
몸이 불편해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
하지만 이 아이의 내면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았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못 하고 괜찮은 척 늘 웃으며 지내는 내가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무엇이 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건
바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여기 있어요.
나를 봐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아무도 반응을 안 해줄까 봐,
거절당하고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 그렇게 두려웠니.
뭐가 그렇게 두려웠니.
어른이 된 내가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 안에 아직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준다.
수많은 그림책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드디어 내가 나를 보기 시작했고
누군가도 나를 보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내면의 진솔함을 주고받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진정한 소통을 경험하는 삶은 세상을 꽤 살만하다고 느끼게 한다.
아무도 날 봐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렇게 한 쪽에 쭈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나 자신을 보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데서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
나는 오늘 무엇을 볼 것인가.
누구와 소통할 것인가.
내가 무엇을 보느냐가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