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

그 마음이 과연 '선하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by Dana Choi 최다은
나를 지키려 한 행동이 정당한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속 깊게 들여다본다면 그 마음이 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러 사람을 태운 배가 암초에 걸려 난파하게 되었다. 바다에 빠진 한 사람은 난파선에서 흘러나온 판자를 붙잡고 겨우 바다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다. 그가 붙잡은 판자는 한 사람을 겨우 지탱할 만한 부력을 지닌 것이었다. 이때, 미처 붙잡을 만한 것을 찾지 못하던 한 남자가 헤엄쳐 와 그가 의지하고 있던 판자를 붙잡았다. 두 사람까지 지탱할 만한 부력이 없던 판자는 이내 가라앉으려 했고, 이에 둘 다 빠져 죽을 것을 염려한 그는 남자를 판자에서 밀어내어 결국 남자는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한편 목숨을 건진 그는 재판을 받고 무죄 판결을 받게 되어 풀려난다. -카르네아데스 판자-


정당방위에 대한 개념을 찾아보다가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문제를 읽게 되었다. 이 문제는 살인이라는 위법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상황 즉 다른 행위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유로 살인에 대한 책임은 없다. 결국 무죄로 판결받았다고 해석된다. 법적으로는 무죄인데 도덕적으로는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지? 그 상황이 내가 만난 상황이었다면 나는 내 생명을 지키려 했겠지? 그런데 나는 과연 그 판자를 지키려는 마음이 오롯이 판자는 내 것이니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왔다면 그 마음은 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정당방위라는 것은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행동이어야 하고 그 방어 행위가 우리 상식에 비추어 상당한 정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 나의 과거의 행동은 분명 나를 지키려는 의도를 가진 정당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무례하게 대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였다면 그 마음이 과연 '선하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정우영 발로 찬 이야기

얼마 전 친정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현듯 아! 이도진 멱살 잡은 이야기를 써야겠다. 아님 정우영 발로 찬 이야기? 남자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과거의 기억을 기록해 본다. 물론 정. 당. 방. 위.라는 명목하에.


때는 유치원 시절, 우리 반에는 정우영(가명)이라는 남자아이가 있다. 물론 전적으로 친정엄마 기억의 편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정우영 엄마는 아들이 주변 친구들을 발로 차고 밀쳐도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바르게 훈육하지 못하는? 안 하는? 분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약하다고 느끼는 여자아이들을 툭툭 치거나 괴롭힌다. 물론 나도 그 대상이었겠지. 친정엄마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정우영이라는 아이가 너를 계속 괴롭힐 때 너를 괴롭히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다은아 너도 똑같이 발로 차!"


물론 지금은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이런 방법은 가르치기 어렵다. 나는 발차기 연습을 엄마와 같이 여러 번 하며 용기를 다진다. 마침내 기회가 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우영은 나를 발로 찼고 나는 매일 연습했던 모든 루틴의 가속도의 힘을 한꺼번에 빵 터뜨리며 상당한 힘을 가해 정우영을 발로 차버린다.


정우영은 꽤 멀리까지 내동강이 쳐졌고 마침 엄마들과 모두 함께 있는 자리여서 정우영엄마는 나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못한 채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어떻게... 흑흑" 괜찮냐며 마음 아파하신다. 그 이후 정우영이 유일하게 건드리지 못하는 여자아이가 최다은이 되는 사건이 된다.



이도진 멱살 잡은 이야기

이도진(가명) 이야기는 중학교 3학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슨 경시대회 준비였나 기억은 가물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나와 이도진을 포함해 몇몇 아이들을 봉고에 태우고 한 명씩 집 앞에 내려다 주는 길에서 발생한다.


봉고 운전하시는 분이 갑자기 급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내가 이도진 무릎 위로 털썩 앉게 되었다.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이도진이 의도한 것은 더더욱 아닌데 그 나이 또래 애들답게 옆에 있는 남자아이들이 우~~~~ (효과음 상상)하면서 이도진을 놀린다. 괜히 부끄러운데 괜히 남자다움을 드러내야 하는 나이인 만큼 이도진은 내가 내리고 봉고가 떠나는 그 찰나에 창문을 열고 나에게 소리친다. "이 18 여자야!!"


분을 낼 기회도 사라진 채 봉고는 떠나간다. 그날이 공교롭게도 마지막으로 공부하는 날이라 더 이상 그곳에서 이도진을 볼 수 없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 씩씩거리며 집에 도착한다. 친정엄마답게 조언을 하신다. '화를 다스리기 힘들 정도로 억울하면 찾아가서 사과를 받아내라고'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1반부터 4반은 모두 남자반, 5반부터 8반은 모두 여자반 그 사이는 여자화장실 남자화장실이 있었다. 그 화장실들이 위치한 중간 선을 넘어가는 것은 보통 상대에게 고백을 하거나 선물을 전달하는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남여여가 완전하게 구분되어 생활하기에 대부분 우리는 그 선을 넘어가지 않는다.


그 선을 과감히 넘어 이도진 반 앞에 도착한다. 앞에 보이는 어떤 남자아이에게 이도진을 복도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이도진은 쭈뼛거리며 복도로 나오는데 주변 친구들이 모두 우~~~ (효과음 상상)하며 우리 둘 사이를 삥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나는 나의 목적달성을 위해 강하게 노려보는 눈빛으로 이도진에게 묻는다.


최다은: "어제 나한테 뭐라고 했어?"

이도진: 머뭇거리며.."내가 뭐... 뭘......"

최다은: "나한테 18 여자라고 했지? 너 당장 사과해!!"

이도진: "뭐.... 뭐.."

하는 순간 180cm가 족히 되어 보이는 덩치 큰 이도진이 비겁하게 교실 안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도진의 교복 상의의 목덜미 부분을 강하게 잡아끈다. 그는 나의 멱살에 바둥바둥 거리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듯 매우 다급하게 멱살을 뿌리치며 교실로 도망간다.


그에게서 사과는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 같은 학년 아이들 중에 최다은과 이도진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도진이 친구들에게 자신에게 최다은의 '최'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는 통쾌한 소문도 함께 듣는다. 승리의 쾌감을 느끼며 나의 행동을 매우 정당화 한 기억이 있다.



정당한 행위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오만함

최근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누군가의 찬사를 받거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마음 깊숙이 존재하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가만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분명 옳은 일이었고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나같이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은 무지와 오만으로 가려진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다소 과격하지만 나를 지키려 한 행동이 정당한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깊은 곳에 있던 마음은 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


화요일 [건강한 가정은 작은 천국]

수요일 [새벽독서, 책과 나를 연결 짓다]

목요일 [판도라 상자? 열어야겠지?]

금요일 [브랜드 시야로 나 세우기]

토요일 [현실과 이상의 연결, 지혜로 말하다]


14일마다 [다나의 브런치 성장기록] 매거진이 발행됩니다. 한 달간 브런치 성장기록을 담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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