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는 본능일까 학습일까

자발적인 희생정신에서 오는 위대함

by Dana Choi 최다은

모성애는 본능일까 학습일까

워킹맘으로 일하고 있을 때 나는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남편과 나는 월화수목금, 9 to 6 직장인인데 엄마라는 이유로 나만 늘 아이에게 미안했다. 주말은 온통 아이와 24시간을 꽉 채웠고 휴가를 내도 아이와 함께 했다. 단 1시간도 쉼이 없었던 시간이었다.


모성애는 자녀에게 헌신하고 육아와 가사노동을 모두 책임지는 것이라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자연스럽게 믿게 된 결과였을까. 이상적 어머니상과 내가 겪고 있던 현실의 괴리를 몸으로 부딪혀 가면서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마치 슈퍼우먼이 되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난하고 괴롭혔다. 지독히도.


출산이라는 무지의 고통

나에게 출산은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선배 엄마들의 과장된 썰 중의 하나는 복부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끔찍한 고통이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을 만나야 아이가 나온다고도 한다.


막연한 공포를 이기려고 출산 시 올바른 호흡법 등 관련 영상을 찾아본다. 아기가 낳을 때 얼굴에 힘을 잘못 주면 실핏줄이 터져 오랜 시간 고생한다는 조언을 듣고 어떻게든 힘을 잘 줘서 한 번에 낳아야지 굳은 다짐으로 틈나는 대로 진통이 심하게 올 때를 상상하며 연습한다.


4cm 정도 자궁문이 열리고 무통주사를 맞았는데도 아기가 잘 내려오지 않으면 덩치가 큰 간호사님이 위에서 힘으로 누르기도 한다던데 다행히 나는 노련한 수간호사님과 미리 완벽하게 익혀둔 호흡법과 힘주기 덕분인지 아기를 나의 힘으로 계속 내렸고 (물론 뱃속에서 아기도 엄청난 노력을 한다고 한다) 엄마와 아가의 인고의 노력 끝에 딸아이는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온다.


아기를 낳고 바로 엄마라고 불린다

양수에 퉁퉁 불은 아기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찰나에 드는 생각은 '왜 이렇게 못생겼지?' 누구는 아이와 마주하는 그날, 엄마 가슴에 안긴 아기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이의 호흡을 느꼈을 때 모성애가 생겼다고 하던데 나는 단지 얼떨떨한 기분이다. 물론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를 만난 것에 감사하지만 바짝 말라 입술의 껍질이 벗겨지고 온몸에 힘이 한 가닥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휠체어에 도움을 받아 입원실로 이동한다.


다음 날 아침. 양가에 첫 손주라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눈을 감고 곤히 자는 신생아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어디가 예쁘다. 누구 꼭 닮았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천사 같다. 물론 나도 아기를 바라보며 내 동생 한 마디에 매우 공감한다. "어머! 형부가 왜 이렇게 작아졌어?" 정말 아빠 똑같이 생겼구나. 아이를 낳고 한동안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너무 예쁘다 신생아.

조리원 2주를 마치고 친정에서 4주를 보내는 시간 동안 가슴라인만 절개된 수유용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 퉁퉁 불은 몸과 아이에게 줄 모유 덕분에 매번 아픈 가슴을 붙들고 괴로워 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마다 괴롭다. 왜 꼭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것일까? 한 달만 초유를 준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염증도 생겨서 고통은 더욱 심하고 아기가 배고파할 때마다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모유를 한 달 만에 끊다

모유수유를 끊는 게 아기를 돌보는데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모유수유를 한 달만 주고 끊는 것은 모성애가 없는 엄마라는 죄책감도 함께 말이다. 그 당시는 존재만으로 미운게 남편인데 꼭 한 마디 덧붙인다. "모유수유를 끊는 게 말이 되냐며.."


결국 못 미더워하는 남편을 뒤로한 채 모유를 끊는 약을 먹고 모유를 끊는다. 그 이후 아기를 안고 분유를 주는 시간이 내내 행복하다. 내 몸이 아프지 않으니 밤낮이 구분 없는 신생아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그리 힘들지 않다.


모성애라는 것은 본능일까? 학습일까?


나는 모유를 한 달 주고 바로 끊었던 엄마라는 사실을 그리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모유수유=모성애라는 공식이 지배적인 분위기라 자의적으로 모유를 끊었다고 하면 매정한 엄마라는 시선이 두려웠다.


자발적인 희생정신에서 오는 위대함

모든 것은 안에서 잉태되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감정의 싹이 자신의 마음속이나 무의식, 그리고 이성으로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불가사의 속에서 완성되게 한 채, 겸허함과 인내로 분명함이 새로 태어날 시기를 기다리도록 하십시오(주).

모성도 겸허함과 인내로 분명함이 새로 태어날 시기를 기다리는 예술작품처럼, 내적인 삶의 성장에 따라 자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기울음소리에 반응하는 엄마의 독특한 신경회로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사실이 유의미한 것일까?


모성은 본능이나 학습이기 이전에 숭고한 것이다. 모성에 대해 본능이라 정의한 다음 의무라는 잣대로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묻고 싶다. 모성은 자발적인 희생정신에서 오는 위대함이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아이라는 존재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하고 소중하다. 모성애는 본능이든 학습으로 만들어졌든 그 어떤 감정보다 고귀하고 강한 것이니까.




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2014, 태동출판사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


화요일 [건강한 가정은 작은 천국]

수요일 [새벽독서, 책과 나를 연결 짓다]

목요일 [판도라 상자? 열어야겠지?]

금요일 [브랜드 시야로 나 세우기]

토요일 [현실과 이상의 연결, 지혜로 말하다]


14일마다 [다나의 브런치 성장기록] 매거진이 발행됩니다. 한 달간 브런치 성장기록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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