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사이, 자매지간
자매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을까?
동생이란 존재가 생긴 후 달라진 나
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내가 두 돌이 막 지날 무렵 엄마는 갓난 아가를 안고 있었는데 동생이라는 존재가 생겼다는 사실이 어린 아가였던 나에게 그렇게 큰 상처가 되었는지 크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질투는 엄마 뱃속에서 동생이라는 생명이 생겼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은 아기의 행동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였는데 안 하던 저지레 행동을 하며 본능적으로 동생의 존재에 대한 불안을 맹렬히 표현했다고 하니.. 얼마나 두려웠던 것일까?
동생이 태어나고 엄마는 늘 나와 동생을 분리시켜 놓으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셨다. 혹여나 사고가 발생될 것을 미리 짐작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잠시 긴장을 놓은 찰나 내가 동생이 있는 방으로 홀로 가는 상황이 허락된다.
그리고는 백일 아가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가 퍼진다. 엄마는 깜짝 놀라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다은아 동생에게 어떻게 한 거야?” 엄마의 물음에 순진하게 다은 아기는 대답한다. “이게 동생이라면” 인형을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서 퐁퐁을 뛰는 모습을 재현한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동생이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저지른 악행인 것 같다. 순수한 아기가 얼마나 악한 것인가? 어찌 보면 동생에게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감사한 큰 사건이었다.
엄마는 그 사건 이후로 어떻게 하면 질투가 심한 내가 동생을 덜 미워할 수 있는지에 공부를 하신다. 무조건 첫째 위주로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얻은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의 관계에서 무조건 내편을 들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을 훈육하는 방법을 택한다.
어느 날은 기저귀를 잠시 채우지 않은 것을 깜빡한 엄마가 동생을 맴매한다며 엉덩이를 톡톡 했는데. 기저귀가 채워지지 않아 아팠던 동생은 울음을 터뜨리고 그렇게 나 때문에 고통받기도 한다.
사랑해 주지 못한 동생
어릴 때부터 나는 동생을 사랑해 주지 못했다. 동생은 늘 언니를 자랑스러워했는데 난 동생이 매우 귀찮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나의 중학교 모교를 방문하며 선배들을 맞이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중학교 후배인 동생이 자랑스러운 언니를 보고 매우 반갑게 달려온다. 나는 아는 척하지 말라며 다가오는 동생을 냉정하게 거부한다.
동생은 자라오며 나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동생이라는 존재로 인해 내가 누군가의 언니가 되었다는 사실이 싫었던 모양이다.
맏이가 지극히 싫었던 나
개인 심리학 창시자 아들러(Adler)에 따르면 첫째 아이는 동생에게 자리를 빼앗긴 경험으로 권위와 권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이후 성인이 되었을 때 규칙과 질서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주의자가 되기 쉽다고 한다.
예외 없이 첫째인 나도 부모의 은연중 기대에 따라 책임감이 강하고 사회의 규칙을 준수하고 모범생으로 자랐다.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고 주위 사람에게 지도력을 발휘하려 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며 독단적이고 지배적인 성격으로 형성되어 간다. 그런데 이것이 매우 큰 나의 고통이 되었던 것 같다. '최다은 나 자신'과 '맏이라는 틀에 갇힌 최다은'사이의 갭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꽤나 컸나 보다.
나에게 매우 답답하고 힘든 족쇠라고 느껴졌고 책임감이란 무게를 벗어나고 싶었다. 맏이의 책임감으로부터 오는 염려와 불안이 많아 떨쳐 버리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외동딸을 키우는 이유
결혼하고 절대 나의 아이는 누군가의 누나 혹은 언니로 만들지 말아야지 하는 삐뚤어졌지만 확고한 마음이 있었다. 나처럼 괜한 첫째의 책임감이라는 허상 된 틀에 갇히게 하지 말아야지.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에도 그 당시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던 상처로 나는 외동딸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외동딸로 키우는 것이 이러한 한 가지 이유는 아니겠지만 영향을 미친것은 분명했으니까. 누군가가 자매이면 너무 좋지 않냐는 물음에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한다.
사랑하지만 멀리 있는 동생
분명 사랑하는 나의 하나뿐인 동생인데... 동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각자 결혼을 하고 언제부터인가 나와 동생의 마음의 거리가 매우 멀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이유는 있다. 표면적으로는 살아가는 가치관이 거의 양극의 상태가 되어 동생과 삶이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나눌 수 없다는 것. 현재는 나는 동생과 결이 매우 다른 삶을 살아간다. 동생의 입장에서도 나의 입장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지만 깊숙이 내면의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들어가면 어릴 때부터 분명 서로의 존재로 인해 받은 상처가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언니의 마음으로는 동생이 예전의 누구보다 따뜻하고 예쁜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금 동생의 모습은 원래 내가 알던 동생이 아니니까. 그래서 엄마를 통해 동생의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든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현재 우리는 친자매이지만 이웃보다 먼 사이다. 그리고 이것이 부모님에게는 불효라는 것도 안다. 내가 먼저 관계의 회복을 위한 제스처를 보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만 동생도 그걸 받아들이기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동생은 나와의 관계의 이슈보다 훨씬 거대한 여러 가지 무거운 일들을 헤쳐나가기에도 버겁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다른 자매들처럼
관계가 아름답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때가 되면 나와 동생이 다시
같은 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화요일 [건강한 가정은 작은 천국]
수요일 [새벽독서, 책과 나를 연결 짓다]
목요일 [판도라 상자? 열어야겠지?]
금요일 [브랜드 시야로 나 세우기]
토요일 [현실과 이상의 연결, 지혜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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