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100% 완성이 아님을 의미한다
“나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내가 숨 쉬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주변 사람들을 붙들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죽은 사람은 아니니까 살아있다는 것이 맞는데 살아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면 뭐야.... 이상해.. 숨을 쉬고 있는데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한다면... 당연한 거 아니냐며...
누군가 나처럼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느낌인지 같이 공감하고 싶다.
나에게 이러한 느낌이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찰나에 들어온 글귀다.
우리가 가장 강력해지고 창조적 영감을 발휘할 때는 “추구할 때’이다. 우리는 추구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낀다(주1).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다. 추구한다는 것은 목적을 이룰 때까지 뒤쫓아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적이 이루어지면 나는 살아있음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다시 허무해지는 것일까?
그럼 나의 하루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의 하루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86,400초로 환산해 본다. 그리고 하루 86,400초를 우리 돈 86,400원으로 비유해 보자. 누군가 자신에게 86,400원을 대가 없이 주고 그것을 24시간 안에 다 쓰지 못하면 모두 가져간다고 한다고 가정하자.
누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86,400원을 하루 안에 다 쓰려고 할 것이다. 공짜로 온 돈이니까.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모두 사라질 테니까.
따라서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평하게 주어진다. 모두가 좋아하는 '돈'처럼 유형의 것이 아니라서, 보이지 않는 '무형의 돈'을 어떤 이는 흘려보내고 어떤 이는 알뜰하게 남김없이 사용한다.
알뜰하게 남김없이 사용하는 이는 어떠한 이유로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길까?
바로 오늘 그가 추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맞다. 시간을 아껴 사용하는 자야 말로 ‘추구하는 자’이고 그런 사람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루를 추구하는 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서 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100% 완성이 아님을 의미한다. 영원한 추구는 당신을 겸손하게 이끌 것이다(주2). 미완성으로 남겨진 부분으로 인해 미완성의 부분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는 지혜를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당신의 삶을 추구하는데 가장 현명한 친구는 ‘절망’이기 때문이다(주3).
원하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고통 속에서 깊이 들여다보게 되니까 말이다.
깊이 들여다보며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해 나아가겠지.
수많은 질문들을 통해 본질을 발견해 갈 때 그것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명철이 조금 더 가까이 오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주4).
주1,2)팀페리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2019, 토네이도
주3)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2014, 태동출판사
주4)성경, 잠언 20장 5절
화요일 [건강한 가정은 작은 천국]
수요일 [새벽독서, 책과 나를 연결 짓다]
목요일 [판도라 상자? 열어야겠지?]
금요일 [브랜드 시야로 나 세우기]
토요일 [현실과 이상의 연결, 지혜로 말하다]
일요일 [대한민국 엄마부대]
14일마다 [다나의 브런치 성장기록] 매거진이 발행됩니다. 한 달간 브런치 성장기록을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