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에 걸려 넘어지는 어리석음
9월 초에 크게 넘어지셔서 발목 복숭아뼈 조각이 떨어지고 인대 하나가 끊어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친정엄마. 어제 깨톡 프로필 사진이 산에서 촬영한 것으로 변경되었기에 놀라 전화를 드렸다. "엄마 설마 산에 올라간 거예요?"
사고 이후 매주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시고 상태를 확인하시다가 자부심을 갖고 계신 온라인 검색하기 스킬을 활용하신다. 우리 세대처럼 온라인으로 못하는 것이 없으시다. 아니 필요한 정보를 나보다 더 잘 찾아내실 때도 있다. 너튜브 동영상에서 권위 있고 학식 있는 정형외과 전문의 채널 위주로 여러 개를 보시고 스스로 평형감각 익히기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재활훈련을 꾸준히 하셨다.
발목뼈는 두 달여 시간이 지나면 상당 부분 안정적으로 고정되긴 하는데 발목 주변의 근육과 인대는 조금씩 움직여 줘야 오히려 건강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전문의의 조언이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빠와 함께 가볍게 산책을 하며 걷기도 하셨다. 독립적이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엄마의 방식이다.
할머니 나이에 뼈나 인대를 다치면 오랜 시간 고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서 몸 사릴 만도 하신데 얼른 회복하고 내년 6월 이태리 트래킹을 가신다고...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 보이는 표정은 오롯이 당신의 취향에 맞게 허름하지만 잠만 잘 수 있는 알맞은 숙소를 예약하고 아빠와 하루 장장 20-30킬로를 걸어야 하는 루트를 계획하며 미지의 세계를 떠나는 설렘이 충만한 바로 그 순간이다. 발목이 겨우 회복하는 시기라 1년은 조심하라고 했을 텐데 또 고된 걷는 여행을 계획하시다니 못 말리는 우리 엄마다.
큰 딸의 입장에서 잔소리를 하려다가 꾸욱 참는다. 엄마의 삶은 여행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기에. 일반적인 패키지여행이 아닌 모험정신이 없으면 선뜻 시도하기 힘든 여정이다. 히말라야 안나프루나, 남미 한 달 자유여행, 프랑스 남부에서 차를 렌트해서 파리까지 꼬박 9박 11일을 운전하며 하는 모험, 최근 몽블랑 트래킹까지 모든 것이 50대 이후 철저하게 스스로 계획하신 자유여행이었다.
‘엄마 여행도 중요하지만 절대 무리하면 안 돼요. 알지? 엄마가 사랑하는 트래킹을 영영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당분간 발목은 진짜 조심해요.’이 말이 힘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발 딸의 조언을 귀 담아 듣기를 바라며 한 마디를 건넨다. 엄마를 닮았나 보다 나의 고집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옳은 것에 대해서 남의 말을 잘 들어보려 하지 않는 귀를 가진 것이 엄마 딸 맞다는 증거인가.
개성이 강한 엄마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우선시하셨기에 넘치는 열정을 뒤로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섬기는데 집중하신 우리 엄마. 운동과 그림, 글쓰기 등을 배우며 꾸준하게 자신을 위한 시간을 꼭 챙기신 엄마기에 할머니가 된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계획하신다. 그런 엄마가 롤모델이라고 항상 외치는 딸도 글을 쓰고 있네. 신기하다.
엄마에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엄마의 자부심은 충분히 갖고도 남을 만큼 멋져요. 하지만 그것이 엄마를 넘어져 크게 다치게 했잖아. 자기 확신에 찬 엄마가 멋있지만 스스로 경계하셨으면 좋겠어요.’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모녀 사이라는 것이 감사하다. 되돌아보면 엄마를 걱정한 충고는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잘나서 내가 선택하였기에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확신에 찬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험하고도 반복된다면 오늘도 내일도 달라질 수 없다. 가득 찬 우매함을 내려놓는 연습을 다시 하자. 차 오를 때마다 비워내고 또 비워내자. 의도적인 노력을 포기하지 말자. 그 언젠가는 애쓰지 않아도 나 자신이 비워지고 지혜라는 신비가 덮어지는 기가 막히는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