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
태생적인 다혈질로 태어나 욱하는 기질이 있다. 브랜드 업계 첫 회사에서 팀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 선배에게 화를 내며 의견을 내세우다가 선을 넘은 적이 있다. 몇 달간 인사도 건네지 않고 불편한 관계로 지내다가 결국 스스로 잘 못한 부분을 용기 내어 사과하고 일단락 지었던 사건.
면세업계로 전향한 회사에서도 맡고 있던 브랜드 자리에 대해 얘기하다가 불편한 말을 하는 상대 과장님에게 언성을 높였다. 물론 그 당시 과장님의 언행이 무례했기에 먼저 사과를 하긴 했지만 부장님께 둘 다 불려 가 주의를 받았다. 공적인 자리에서조차 부당하거나 억울하거나 참지 못하는 일을 토해내 버렸다.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억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정당하나 당돌하면서 지랄 맞았다. 방학이 끝날 무렵 학원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급 정거를 하는 바람에 어떤 남자아이(여전히 이름도 정확히 기억난다) 무릎 위로 앉게 되었고 주변 아이들이 우~ 하면서 놀렸다. 집 앞에서 내리자마자 창문을 열고 그 남자아이는 나에게 ’이 열여덟 여자야!‘라고 욕을 했다.
놀림받은 부끄러움을 멋짐으로 지워내려는 중학생의 특유의 허세였다. 학원 차는 떠났고 왜 저 욕을 들어야 했나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 날 남자아이 반 앞에 찾아가서는 불러 세웠다. 어제 뭐라고 했냐고 따져 묻는 나에게 키 180센티의 덩치 큰 남자아이는 뒷걸음질 쳤다. 도망가길래 결국 그 아이 멱살을 잡고 사과하라고 소리쳐 그날 전교생의 입에 오르내린 사건부터.
절정은 결혼생활이었고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인 만큼 남편과는 치열했다. 글로 담아내기 부끄러울 정도로 불과 불의 만남이었으니 모든 이의 상상에 맡기리라. 그렇게 십 년이라는 시간을 지내오면서 스스로 화를 다스릴 줄 아는 이가 된 것 같다며 지난 과거를 웃으며 회상한다는 여유로움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고작 3일 아이 고열로 신경이 매우 곤두서 있고 남편은 새벽 5시 넘게 강행군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힘든 시기가 오니 화가 차곡차곡 쌓이다가 결국 어젯밤에 폭발한다. 아이가 열이 나지 않고 괜찮은 것 같으니 엄마의 마음도 긴장이 풀린다. 징징 소리를 들어주지 못한다. 들어가 혼자 자라며 화를 내버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소리를 지른 것은 아이에게도 미안하지만 3일 동안 엄마로서 할 만큼 했다는 마음에 스스로 합리화하는 자신이 미울 만큼.
아직도 멀었구나. 새벽 5시가 넘도록 일하는 남편이 너무 밉다. 티 나지도 않은 아이 간호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롯이 얽매여 있는데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아무 잘못도 없는 남편 꼴도 보기 싫은 마음. 못났지만 지금 이게 바로 나이니까.
엄마는 왜 희생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 커리어를 내려놓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에 결정한 것이지만 이런 예외의 시기에 억울함이 밀려와 자신을 덮쳐 버린다. 누군가 내 아이를 나처럼 온전히 케어한다면 누구보다 달릴 수 있는 사람인데 화나고 억울하고 무기력한 자신이 싫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언 25장 28절
스스로 마음을 제어하지 않는 사람은 지붕도 없고 벽도 없는 집과 같다. 비가 와도 막아줄 수 있는 것이 없고 누구나 침입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 굉장히 불안하고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다.
힘들 때 본성이 나온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 평안한 시기에는 감추고 있는 것뿐이다. 나 자신이 엉망진창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뒤죽박죽이 된 마음을 정돈해 가야 한다. 나가야 할 방향은 알고 있으니까. 태어나길 온유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어쩌겠어 후천적으로 부단히 애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