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 괜찮을까?
송길영의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 따근따근한 책을 펼친다. 위로부터 아래로 억압되는 권위주의 시대는 무너지고 있고 이미 개인이 네트워크 힘으로 자립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되었다. 작가는 핵개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만큼 집단과 기성이 정해 놓은 힘이 더 이상 기반이 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초반만 읽었는데 대부분 내용이 수용되고 공감이 된다. 그러나 뒤따라오는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가진 많은 문제는 모든 권위의 무너짐에서 야기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권위, 선생님의 권위, 상사의 권위. 어른들의 권위가 무너진 시대. 모든 권위는 인정을 기반으로 하는데 권위를 유지하려는 사람과 권위를 찾는 사람이 원하는 합당한 인정이 출발점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부모의 조언을, 선생님의 가르침을, 상사의 경험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누구나 디지털 도구의 도움으로 개인의 제한된 지식에서 오는 부정확하고 시대착오적인 정보가 현재 나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제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이다. 부모는 자식이 미성년자의 신분일 때까지는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를 훈육하여 돌보며 무엇이 옳고 그름을 보여줘야 한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의 본질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부모가 된 자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통솔과 지휘가 없이 자란 아이가 사회에 나왔을 때 과연 적응할 수 있는 성품을 만들어 왔을까?
교권이 무너진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아이들. 선생님이 무섭지 않은 교실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인권을 먼저 배워온다. 물론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스스로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권리를 배우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 시대 분위기 속에 모든 권위가 사라지고 인권이 가장 중요시되는 풍토는 사회의 덕목이 균형을 잃게 되는 역효과가 될 수도 있으니까.
권위적이란 말과 권위는 완전히 다른 뜻이다. 권위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권위만 내세운다. 그런 사람들을 대부분 존중받지 못한다. 권위는 그 사회에 존재하는 책임과 의무이다. 자율성은 가정이란 작은 사회에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까지 그 안에 존재하는 책임과 의무가 주어질 때 아름다울 뿐이다. 부모, 교사 등 어른의 권위가 무너진 사회에서 다음 세대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시대예보>는 날카롭다. 가까운 미래를 보다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시대는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흘러갈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바르게 양육해 나갈지 고민이 크다. 나 조차도 시대 분위기에 스며들어 가장 귀중한 것을 놓치게 되기도 하니까. 시대가 주는 유용함을 잘 활용할 줄 알면서 그 리듬에 중요한 가치를 잃지 않도록 정신을 번쩍 차리고 부여잡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