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하게 나 자신이 되어보기

유리컵 속의 void를 채우는 빛

by Dana Choi 최다은

이 유리컵을 사람의 몸이라고 가정해 보게. 컵은 무언가 담기 위해 존재하지? 그러니 원칙적으로 비어 있어야겠지. 비어 있는 것 그게 void이라네. 비어 있으면 뚫린 바깥 면이 어디까지 이어지겠나 끝도 없지 우주까지 닿아 그게 영혼이라네.


빈 컵에 물을 따랐어. 이 액체가 들어가 비운 면을 채웠잖아 이게 마인드라네. 우리 마음은 항상 욕망에 따라 바뀌지? 그래서 보이차도 되고 와인도 돼. 똑같은 육체인데 한 번도 같지 않아 우리 마음이 늘 그러잖아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지. 저 사람 왜 화났어? 뜨거운 물이 담겼거든.


죽으면 어떻게 되나? 컵이 깨지고 차갑고 뜨겁던 물은 사라지지. 컵도 원래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러나 마인드로 채워지기 이전의 컵 안의 void는 사라지지 않아. 공허를 채운 영혼은 그 빅뱅과 통했던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거라네 알겠나?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리컵 안의 빈 공간을 인정하지 않는 거라고. -이어령-


인간의 영혼에 대해 이렇게 쉽고도 명확하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영적인 통찰의 세포가 하나 둘 찌릿하게 반응하는 경험을 한다. 빈 공간이 많을수록 영적인 영역이 커지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영혼 없는 육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스스로 마인드로만 채우고 살았는지 영혼으로 채우고 살았는지 말이다. 깨지고 나면 알게 된다는 것. 죽음에 문턱에서만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


나의 유리컵은 지금 무엇을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욕망은 어디까지 유리컵을 채우고 있을까? 깨지기 전에 내가 void를 채울 수 있으려면 다시 말해 나의 영혼을 채우려면 어떠한 것들을 비워낼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 고통과 슬픔이 찾아오면 욕망을 비운다.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이 아파올 때, 절망에게 압도당하며 온전히 짓눌릴 때,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는 순간. 나라는 욕망을 비운다. 그 순간 창조가 일어난다. 새로운 시각과 희망이라는 빛이 void를 가득 채운다. 마치 모든 아픔들이 아름답게 사라지는 꿈을 꾸는 듯.


고통 속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낀다. 그 힘으로 나는 다시 일어난다. 그 누군가는 나에게는 하나님이고 다른 이에게는 우주와 맞닿은 알 수 없는 어떤 빛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고통마저 기쁨이 될 수 있는 힘. 당신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함께 아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교감 말이다.


정체되지 않고 성장하는 힘이 바로 이 모든 과정이 아닐까. 고통을 뚫고 나오는 내적인 희열이 창조의 동력이 되는 것처럼. 기도하듯 글을 쓸 때 나는 더 나 다운 사람이 되곤 하니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유리컵 속의 void를 채우는 빛을 경험할 수 있기를. 나라는 욕망을 비우는 창조의 경험이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정말 나 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 가는 진실이 될 테니까.



반짝이는 빛은 아름답다. 고통을 기쁨으로 변하게 하는 그 빛.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함께 하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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