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심리상담은 흑과 백으로 나뉘는 문제가 아니었다. 꼭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대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에게 맞는 시기가 아니었을 뿐이다. 나는 “좋다는 건 다 해보자”는 심정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먹겠다는 사람처럼, 한 시간에 꽤 비싼 상담도 몇 번이나 받았다. 심리상담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담을 받을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내가 다닌 세 곳의 상담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됐다. 과거를 먼저 꺼내는 것이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한 상상이 밤낮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위에 과거의 이야기까지 차곡차곡 얹어졌다. 안 그래도 흔들리던 마음이 더 깊이 가라앉았다. 물론 그것 역시 치료의 한 방법이라는 걸 안다. 어떤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나에게는 너무 버거웠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묻는 질문 앞에서 나는 매번 과거로 되돌아갔다. 가난해서 늘 바빴던 엄마, 가정폭력이 잦았던 아버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충분히 아파했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났다. 그걸 말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상담이 끝날 즈음이면 늘 눈물바다가 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한없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왜 아직도 이런 이야기에 이렇게 무너질까, 스스로를 탓하게 됐다.
그래서 어느 날, 정신과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심리상담이 너무 힘들다고, 끝나면 더 우울해지고 불안해진다고.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했다. “그럼 지금은 멈추셔도 돼요.” 지금은 과거를 파헤칠 시기가 아니라, 현재를 견디고 미래를 버틸 힘을 먼저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좋은 생각, 긍정적인 감각으로 나를 채우는 일이 먼저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심리상담을 중단했다.
한 상담소에서는 과거 이야기는 잠시 멈추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건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길이 지금의 나와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 심리상담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심리상담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생명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모든 치료가 그렇듯, 타이밍과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의 나는 이미 충분히 아파 있었고, 더 깊이 파고들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잠시 멈췄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치료를 중단하는 것도 때로는 치료의 일부라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지금도 나는 언젠가 다시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건, 과거를 버틸 힘이 생긴 다음의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흑도 백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에게 맞는 회색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