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붙잡고 있던 질문
수면제, 먹어도 되나요? 이 질문을 나는 꽤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자지 않았다. 하루에 두 시간. 그것도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싶으면 금세 깼고, 깨어 있는 시간은 밤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를 덮쳤다. 그래서 결국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면제는 먹고 싶지 않았다.
항불안제보다도, 항우울제보다도 더 망설여졌다. 수면제까지 먹는다는 건, 뭔가 마지막 선을 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내가 이 정도로 망가진 건 아니지 않을까, 괜한 자존심 같은 게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자존심이 아니라 고집에 가까웠다. 너무 힘들 땐, 먹어야 한다. 그게 내가 뒤늦게 배운 사실이다.
막상 먹어보니 드라마처럼 꿀잠을 잔 건 아니었다. 수면제를 먹어도 최대 네 시간. 늘 네 시간쯤 되면 눈이 떠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몸이 먼저 깨어났는지, 마음이 깨웠는지.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네 시간이라도 잔 게 어디냐고. 두 시간에서 네 시간으로 늘어난 건, 분명한 진전이라고. 그때의 나는 기준이 아주 낮아져 있었고, 그래서 작은 변화에도 감사할 수 있었다.
수면제에 대해 나처럼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수면제에 손이 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먹으면 중독되는 건 아닐까, 멍해지진 않을까,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닐까. 온갖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잠을 잃은 상태로 버티는 일이었다.
내 경우 밤은 점점 무서운 시간이 되어갔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가슴이 조여왔고, 또 하루를 이렇게 넘겨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그때 깨달았다. 잠을 잃으면, 마음도 같이 무너진다는 걸. 잠을 못 자는 긴 밤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밤은 원래도 생각이 과장되는 시간인데, 수면 부족까지 겹치면 상상력은 최악의 방향으로만 확장된다. 게다가 수면 부족은 혼자 오지 않는다. 식욕부진, 소화불량, 식은땀, 두통까지 데리고 온다. 마치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것처럼, 한 명씩 차례로 등장한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은 더 쉽게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밤은 더 길어진다. 아주 성실한 악순환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무 힘들어서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면, 일주일 정도는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고. 평생 먹겠다는 각오가 아니라, 리듬을 다시 맞추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잠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에 가깝다. 잠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면, 생각은 덜 날카로워지고, 감정은 덜 극단적으로 흔들린다.
나 역시 수면제가 내 인생을 해결해주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덕분에 밤을 덜 무서워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수면제는 나를 완전히 재워주진 못했지만, 적어도 나를 조금 쉬게 해줬다. 그리고 그 ‘조금’이, 다음 날을 살아내는 데는 충분했다. 그러니 혹시 지금도 밤이 너무 길고, 어둠이 너무 무겁다면, 혼자서만 버티지 않아도 된다. 잠을 청하는 일은 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선택하는 용기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