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어… 또 나비네. 잉어도 또 나오고, 호랑이도 또다. 세상엔 그릴 게 이렇게 많은데, 민화는 왜 늘 이 멤버들로만 돌아갈까. 마치 동창회 사진처럼, 몇 명 안 되는 얼굴들이 계속 돌려 쓰이는 느낌이다.
처음엔 조금 의심스럽다. 혹시 상상력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다른 건 그릴 줄 몰랐던 건 아닐까. 그런데 이 질문은 오래 가지 않는다. 민화를 조금 더 보다 보면, 이 반복이 실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민화는 새로운 이야기를 invent, 그러니까 굳이 발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일부러 다시 꺼내는 그림이다. 나비는 기쁨과 화합을 뜻했고, 잉어는 오르고 또 오르려는 마음을, 호랑이는 무섭지만 동시에 지켜주는 존재를 의미했다. 이건 설정이 아니라 공통 언어에 가까웠다.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다들 아는 이야기,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뜻.
그러니 민화는 낯선 세계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처음 보는 상징으로 사람을 놀라게 할 이유도 없었다. 민화가 걸릴 자리는 전시장이 아니라 집 안이었고, 관객은 전문가가 아니라 매일 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이었다. 어른도 보고, 아이도 보고, 바쁠 때는 흘끗 보고, 어떤 날은 전혀 보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그림이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면, 아마 금방 피곤해졌을지도 모른다.
민화가 택한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함이었다. 놀라움보다 안심이었고, 해석보다 공감이었다. 그래서 같은 얼굴들이 계속 등장한다. 나비가 또 나오고, 잉어가 또 뛰고, 호랑이가 또 서 있다. 그건 “또 이거야?”가 아니라, “이건 아직도 필요하지?”에 가깝다. 반복은 게으름이 아니라 확인이다. 아직 괜찮은지, 아직 통하는지, 아직 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그래서 지금 우리가 민화를 볼 때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처음 보는 그림인데도 낯설지 않고, 설명을 몰라도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나비를 보면 괜히 기분이 풀리고, 잉어를 보면 이유 없이 응원하게 되고, 호랑이를 보면 무섭기보다 웃음이 먼저 나온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매일 새로운 일을 벌이지는 않지만,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같은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걱정을 하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한다. 그 반복이 때로는 지겹고,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민화는 그 반복을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이 이야기는 아직 유효하다고. 굳이 매번 새롭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로도 오늘을 버틸 수 있다고. 그래서 민화의 반복은 지겹지 않고, 오히려 조금 든든하다. 같은 얼굴을 또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민화는 우리가 여전히 그 이야기들을 필요로 한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평생 동안 필요로 하게 될 거라는 걸, 생각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