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모든 것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통장에 찍히던 숫자만 잃은 것은 아니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내일, 애써 쌓아올린 시간들, 성실하게 살아오면 적어도 삶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까지 함께 잃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스무 평짜리 월세집으로 이사했다.
한때는 너무 당연해서 소중한 줄도 몰랐던 것들이, 이사 온 집에서는 하나하나 낯설게 느껴졌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집, 녹물이 나오는 부엌과 세면대, 아이의 물건을 둘 자리를 고민해야 하는 좁은 공간, 생활의 크기가 갑자기 작아졌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실감해야 하는 하루들.
그 모든 것이 마음을 자꾸만 주저앉게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엄마인 나는 무너져도 완전히 무너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는 아침이 되면 밥을 먹어야 했고, 옷을 입어야 했고, 웃기도 하고 안기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출근과 요리, 할 일을 해내야 했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삶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슬픔도, 상실도, 절망도 잠시 미뤄둔 채 나는 또 하루를 건너야 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감사일기를.
처음에는 솔직히 감사할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감사 같은 말을 꺼내는 것조차 내 현실 속에서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믿는 사람에게 감사는 너무 멀고 낯선 단어였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닥까지 내려가 보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간 하루.
아이의 따뜻한 손.
울다가도 결국 다시 씻고, 다시 눕고, 다시 아침을 맞는 일.
내 곁을 조용히 지켜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내 안의 작은 마음 하나.
감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이 완벽하다는 증거도 아니었고, 괜찮다는 연기도 아니었다.
감사는 오히려, 괜찮지 않은 날에도 살아내기 위해 붙드는 아주 작은 손잡이 같은 것이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끝내 아이 앞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적는 한 줄의 고백이었다.
이 기록은 울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울고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이다.
전재산을 잃고, 익숙한 삶을 잃고, 내가 믿어온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뒤에도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다.
어쩌면 나는 이 일기를 통해 감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난해진 삶 속에서도 마음까지 가난해지지 않는 법을.
작아진 집 안에서도 사랑까지 작아지지 않게 붙드는 법을.
상실의 한가운데서도 아직 내 삶이 끝나지 않았음을, 조용히 인정하는 법을.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흔, 모든 것을 잃은 그 순간에 가장 낮은 자리에서 비로소 발견한
작고도 단단한 감사의 순간들을 기록한 이야기.
혹시 지금 당신도 어떤 상실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면,
그래서 도무지 감사할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오늘 하루만큼은
아주 작은 것 하나를 붙잡고
조용히 살아내 보자.
나는 오늘도, 감사로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