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정답 아닌 해답.
어느 순간부터 질문 하나가 생겼다. 꽤 오래 그 질문과 마주 앉아 있었는데, 처음엔 질문인 줄도 몰랐다. 그냥 사라지지 않는 생각 같았고, 생각보다 조금 더 무거운 감정 같기도 했다.
‘왜 살아야 하지. 이렇게 힘든데, 나는 왜 버텨야 하지.’
그 질문은 소리 없이 왔고, 이상하게도 자리를 잘 잡았다. 내 마음 한가운데에. 그리고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장례식도 또 돌잔치도 많이 다녔다. 삶의 시작과 끝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했다. 웃음과 울음이 그렇게 멀지 않다는 사실도 점차 깨달았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잔인한 생각이 스쳤던걸까?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잘 돌아가지 않을까. 산 사람은 또 살겠지. 생각해보면 세상은 늘 그래왔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태어나고, 점심메뉴를 고민하는 점심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옳지 않다는 걸 알았다. 머리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생각은 수도꼭지처럼 쉽게 잠기지 않았다. '죽고 싶다'기 보다는 '조금 쉬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다만 그 쉬고 싶음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아이가 있었고, 남편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그래선 안 된다고, 그건 안 되는 생각이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그런데도 마치 누군가가 귓가에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괜찮아.” “조금만 쉬어도 돼.” “너 하나쯤은.” 그게 가장 무서웠다. 그 말들이 차갑지 않아서. 너무 따뜻해서.
언니에게 연락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는데, 늘 그렇듯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아무 일 아니라는 얼굴로,
아직 맛있는 것도 세상에 많고, 가족이랑 보낼 시간도 많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했다. 그 말들이 고마웠다. 정말로. 다만 위로라는 건 대개 유통기한이 짧다. 막 데운 국처럼 잠깐은 따뜻한데, 금세 식었다. 나는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거창한 이유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굳이. 이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힘들게? 질문은 자꾸만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그 우울의 늪에서 나와 정답은 아니지만 나만의 해답 하나를 가지고 있다. 살아야 할 이유를 거창하게 찾지 않기로 한 것. 어쩌면 내가 틀린 질문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왜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은 너무 멀리서 삶을 내려다보는 질문이라는 해답을.
어느 시인은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사람들이었다고. 대단한 보답이나 특별한 사명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사람들. 늘 그 자리에서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가족들, 내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들, 아르바이트하며 샌드위치를 맘껏 싸갈 수 있도록 해주신 샌드위치 사장님, 학비면제 급식비 면제가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늘 연기하며 나를 교무실로 불러 주시던 선생님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그런 사람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누군가의 삶에 아주 조금씩 얹혀 살아왔고, 누군가도 내 삶에 그렇게 얹혀 있었다.
그래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언젠가 내 도움이 필요할 누군가에게 조용히 보답하는 삶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정도면 내가 받았던 조금씩 얹혀 살아왔던 삶들과의 계약으로는 꽤 성실한 편 아닐까 싶었다.
만약 지금 당신에게 아이도, 친구도, 동료도 없다면 그땐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소한 행복 하나쯤 느끼게 해주려고 사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우리가 걷는 길은 대부분 콘크리트로 덮여 있지만, 어느 틈엔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보이는 것들. 삶의 기쁨도 그렇다. 요란하지 않고 대개는 눈에 띄지 않게 그 자리에 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은 최악의 우울 앞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때의 나는 내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당신이 당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아파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은 아주 작은 꽃 한 송이만 찾자. 내일은 몰라도, 오늘은.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