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당에 노크했다.

믿어도 괜찮아.

by 김단아

결혼 전, 나는 혼자 성당을 다녔다. 누가 권해서도 아니고,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 공간이 좋아서였다. 혼자 앉아 있기에 적당했고, 조용히 숨 쉬기에도 괜찮았다. 그러다 세례도 받았다. 큰 결심이라기보다는, 여기까지 왔으니 한 발 더 들어가보자는 마음에 가까웠다.


결혼 후에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바쁘다는 핑계는 늘 충분했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회사. 하루를 쪼개도 모자란 시간 속에서 성당은 늘 ‘나중에’로 밀렸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 마음이 괜찮아지면.


그런 내가 다시 성당을 찾았다. 이번엔 여유가 있어서도, 마음이 단단해져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 불안했고, 너무 흔들렸고, 혼자 버티는 데에 지쳐 있었다. 성당 문을 여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내려앉았다. 기도를 잘해서도, 믿음이 깊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 공간이 그랬다.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편안함. 여전히 내 마음 한켠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정말 신이 있을까? 내가 지금 기대고 있는 건, 혹시 공기 같은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이 좋았던 이유는 분명했다. 첫째, 누군가에게 기대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혼자서도 잘 해내야 한다고 배운다. 힘들다는 말보다 괜찮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기대는 일에는 늘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성당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잘 믿지 못해도 괜찮고, 의심해도 괜찮고, 가끔만 와도 괜찮았다. 그저 앉아 있기만 해도 되는 곳. 그 허락이 생각보다 컸다.


둘째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혼자다. 밥도 혼자 먹고, 고민도 혼자 한다. 그런데 성당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잘 몰라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셋째는 루틴이었다. 매일 밤 기도하는 루틴을 가져보기로 했다. 거창한 기도가 아니라, 하루를 정리하는 정도의 시간. 오늘 무사히 지나간 일들, 고마웠던 순간들, 그리고 여전히 불안한 마음까지. 기도는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하루를 접어두는 데에는 꽤 유용했다.


넷째는 감사의 연습이었다. 감사하라고 하면 늘 부담부터 느껴졌는데, 기도에서는 조금 달랐다. 억지로 긍정하지 않아도 됐다. 오늘 숨을 쉬었다는 것, 아이가 잠들었다는 것, 하루를 끝냈다는 것. 아주 사소한 것들. 감사는 삶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 삶을 조금 덜 미워하게 만드는 기술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의 평온을 빌게 됐다. 나 말고도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제야 조금 실감했다. 나만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에서, 모두가 조금 덜 아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가 바뀌었다.


신앙이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흔들리고, 여전히 의심한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건 있다. 믿음이란 확신이 아니라, 기대도 된다는 자세라는 것. 혼자서만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 신이 있든 없든, 그 공간과 그 시간은 나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성당에 간다. 완벽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으로 잠시 쉬기 위해서. 믿어도 괜찮고, 믿지 못해도 괜찮은 곳. 누군가에게 기대도 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곳. 그 정도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했다.


KakaoTalk_20260122_170153082.jpg 직접 촬영한 성당 사진


이전 11화잠과의 싸움에서 붙잡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