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조용히 사람을 살린다.
명상 다음에 내가 붙잡은 건, 아주 오래된 도구였다. 책. 한때 불면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로 밤이 유난히 길어졌을 때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유튜브와 넷플릭스, 쿠팡, 디즈니플러스를 전전했다. 잠을 자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깨어 있는 이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는 점점 유튜브에 빠져들었다. 불안장애,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우울증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고, 영상보다 더 열심히 댓글을 읽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늘 같은 문장들만 먼저 들어왔다. 10년째 낫지 않았다는 이야기, 아무 소용 없었다는 고백,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는 말들. 아이들이 나쁜 말을 더 빨리 배우듯, 어른도 불안을 키우는 문장에 먼저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좋은 댓글보다 나쁜 댓글이 더 오래 남아 잔상처럼 따라다녔고, 그 잔상은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그럴 때 시작한 게 독서였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더 이상 볼 영상도 없었고, 더 이상 읽을 댓글도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독서 역시 한때는 유행처럼 느껴졌다. 다들 말하지 않나. 불안할 땐 책을 읽으라고, 마음이 어지러울 땐 문장을 붙잡으라고.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내가 활자를 씹을 여력이 있어 보이나요? 불안이 심할 때는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문장은 눈에 들어오는데 의미는 옆길로 새고,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방금 뭘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동안 책을 멀리했다. 책 앞에서조차 내가 고장 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할 게 없어서 책을 집어 들었다. 치료도 아니고 공부도 아니고, 그냥 시간을 견디기 위한 용도였다. 놀랍게도 책은 나를 훈계하지 않았다. 괜찮아지라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있었다.
독서의 좋은 점을 굳이 나열해보자면, 첫째는 내 생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불안할 때의 생각은 늘 같은 자리를 맴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현재를 의심한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 머릿속이 아니라 누군가의 머릿속에 잠시 머물 수 있었다. 그 잠시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둘째는 속도가 강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늘 빨리 회복하라는 압박 속에 산다. 얼마나 좋아졌는지, 언제쯤 괜찮아질 건지. 책은 묻지 않는다. 오늘 한 페이지여도 괜찮고, 중간에서 덮어도 아무 말이 없다. 심지어 다시 펼치지 않아도 책은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셋째는 말로 설명되지 않던 감정을 대신 말해준다는 점이다. 어떤 문장을 읽다가 “아, 이거다” 싶은 순간이 있다. 내가 설명하지 못했던 마음을 누군가 이미 문장으로 써놓았다는 사실. 그때 느껴지는 안도감은 꽤 크다. 아,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이 감정에도 이미 이름이 있었구나.
넷째는 조용히 자존감을 회복시켜준다는 점이다. 불안이 심할 때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무 일도 못 하고, 아무 생각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그런데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하루가 완전히 망한 것 같지는 않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은 아니라는 증거가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서는 나를 다시 사람 쪽으로 데려다준다. 불안과 공황은 사람을 자기 안으로만 접어 넣는다. 세상은 위험하고, 나는 연약하다고 계속 속삭인다. 그런데 책 속에는 늘 사람이 있다. 망가진 사람, 회복 중인 사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사람.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내가 아직 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되살려준다.
나는 이제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예전처럼 한 달에 몇 권씩 읽지도 않는다. 대신 천천히 읽는다. 마음이 괜찮은 날에는 두세 장, 힘든 날에는 문장 하나만 읽고 덮는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다. 명상이 숨을 가르쳐줬다면, 독서는 그 숨으로 문장을 읽게 해줬다. 문장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삶을 잠시 빌려 사는 일이고, 그 덕분에 내 삶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되는 일이다.
책은 나를 낫게 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책은 나를 혼자가 아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회복이라는 단어 옆에 충분히 적어둘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