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신점, 철학관을 멀리하자

더욱 악화된 불안장애

by 김단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하루를 버텨내는 법을 배우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았다. 그때 회사 동료들이 “어딘가 정말 잘 맞춘다”며 추천해주었던 점집이 떠올랐다. 아주 용하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불안한 마음에는 꽤 강력한 유혹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점집에서 듣고 싶었던 건 미래가 아니라 안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곧 괜찮아질 거예요.” “지금은 잠깐 힘든 시기예요.” 그 정도의 말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예언이 아니라 응원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점을 본다는 곳에서 만난 젊어 보이는 무당은 한 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안 좋은 이야기만 했다. 앞으로 더 아플 거라는 말, 수명이 길지 않을 거라는 말, 심지어 죽을 때는 꽤 고통스러울 거라는 이야기까지. “오래 살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너무 잔인하게 정확했다. 마치 마음 한가운데를 원펀치로 맞은 사람처럼 멍해졌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불안한 마음에 남편의 점도 함께 봤다. 그것 역시 좋지 않았다. 내가 남편의 나쁜 기운을 휘감는 사주라며, 궁합을 안 보고 결혼한 게 문제라고 했다. 왜 궁합을 안 봤냐는 말에 “그땐 몰랐어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래서 자기는 결혼을 안 한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그날 나는 ‘나는 고통스럽게 죽을 예정이고, 이 결혼은 실패할 운명이다’라는 도장을 이마에 찍힌 기분으로 점집 문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느꼈다. 요가와 명상으로 겨우 일으켜 세운 나 자신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는 걸. 그 후 일주일 정도는 불안도, 우울도 더 깊어졌다. 특히 “몸이 비대해질 것”이라는 말은 여자에게 꽤 치명적인 공포였다. 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프길래 몸까지 망가진다는 걸까. 생각은 생각을 낳았고, 불안은 자기 증식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불안해진 나는 다시 또 다른 점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철학관에도 갔다. 또 다른 말이 나왔다. 그제야 알았다. 문제는 점이 아니라 내가 불안한 상태였다는 것이었다는 걸.

불안할수록 신점, 타로, 철학관 같은 곳을 찾게 된다. 나 역시 개명부터 시작해 점과 타로, 철학관에 쓴 돈이 100만 원은 훌쩍 넘었다. 사실 그 돈으로 차라리 친구들과 밥을 몇 번 더 먹었으면 훨씬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기 어려울 때, 그 말을 대신 해줄 누군가를 찾는다. 그래서 돈을 내고 미래를 맡기듯 앉아 있는다. 하지만 누구의 삶이 좋은 이야기만 나올 수 있을까. 로또 번호도 모르는 세상에서, 미래를 확정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때부터 방향을 바꿨다. 점집 대신 사람에게 갔다. 친구에게 말했다. 가족에게 말했다. “나 요즘 좀 아파.”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 그들은 내 수명을 말하지 않았고, 내 결혼의 성패를 점치지도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넌 잘 살아왔어.” “이건 지나갈 거야.” “지금은 그냥 아픈 거야.” 이 말들은 정확하지도 않고,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숨이 쉬어졌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 문장을 자주 되뇌인다. “모든 경험과 삶은 순조롭게 흐를거야.” 지금이 순조롭지 않아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니까. 불안은 늘 최악을 상상하지만, 삶은 생각보다 조용히, 그리고 성실하게 계속 흘러간다.


아픈 사람은 점을 보러 가기보다 아프다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 예언보다 중요한 건 공감이고, 미래보다 급한 건 지금의 나를 붙잡아 주는 말이다. 그러니 불안할수록 점집 문을 열기 전에 휴대폰부터 열자. 그리고 이렇게 말해도 된다. “나 지금, 좀 아파.” 그 말 하나가 어떤 점괘보다 훨씬 정확한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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