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일주일에 두 번, 월 5만 원.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하는 요가에 등록했다. 하타 요가. ‘어렵지 않은 요가’라는 설명 한 줄이 결정타였다. 어렵지 않으면 할 만했다. 정확히는, 도망치고 싶지 않을 만큼만 힘들면 괜찮았다. 수업 시간은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회사를 다닐 때였다면 꿈도 못 꿀 시간이다. 그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조금 이상했고 조금 고마웠다.
불교에서는 삶을 고행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요가 매트 위에서 몸으로 배웠다. 요가는 대부분 괴롭다. 특히 버티는 자세들은 그렇다. 허벅지는 떨리고, 팔은 후들거리고, 속에서는 계속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이게 무슨 수행이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고통이 끝나고 바닥에 누워 있는 시간에 도달하면 세상에서 제일 편안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온몸이 고맙다고 말하는 느낌. 삶도 어쩌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고통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편안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고통이 없었다면 그 편안함이 이렇게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라는 큰 고통을 통해 내가 얻은 것도 분명히 있었다. 가장 먼저, 회사를 잠시 쉬어도 된다는 용기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이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내 몸은 어디가 불편한지. 마음이 이미 아픈데 몸까지 아프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더 신경을 쓰게 됐다.
아침이 되면 매트를 깐다. 선생님과 함께 50분 동안 요가를 한다. 그 시간 동안은 이상하게 잡념이 덜 올라온다. 명상처럼 애써 비우지 않아도, 몸이 바빠서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리고 창밖에서 햇살이 조금씩 들어오는 걸 보는 게 좋았다. 아, 이렇게 오늘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회사 메일 알림 대신 햇살로 하루를 여는 기분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요가의 좋은 점을 굳이 나열해보자면, 첫째는 몸이 생각을 앞질러준다는 점이다. 불안할 때 우리는 늘 생각부터 앞선다. 최악을 상상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살아낸다. 그런데 요가에서는 몸이 먼저 반응한다. 숨이 가쁘면 멈추고, 힘들면 자세를 낮춘다. 생각보다 몸은 솔직했고, 생각보다 정직했다.
둘째는 견디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된다는 점이다. 어려운 자세를 할 때마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허벅지는 떨리고, 팔은 더는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마음속에서는 수시로 중도 포기를 제안했다. 지금 내려와도 아무도 뭐라 안 해. 그런데 그때마다 조금만 더 버텼다. 아주 조금만. 왜냐하면 우리 선생님은 꽤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었고, 무엇보다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그 자세가 끝나고 매트에 내려왔을 때였다. 몸은 여전히 아픈데 마음이 먼저 뿌듯해졌다. 했다. 오늘도 하나 해냈다는 감각. 그게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자존감을 건드렸다. 불안 앞에서는 늘 작아지던 내가, 매트 위에서는 조금 커져 있었다. 견디고 나니 성취감이 남았고, 성취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아주 사소한 자신감이었지만, 그날 하루를 버텨낼 만큼은 충분했다.
요가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이 성취감이 과장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대단한 목표를 이룬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만 아는 작은 성공.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좋았다. 불안과 공황은 늘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는데, 요가는 아주 조용히 반박했다. 너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어. 네 몸은 아직 네 편이야.
셋째는 아침을 제대로 시작하게 된다는 점이다. 러닝이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나는 밖에서 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럴 때 요가는 좋은 대안이었다. 숨을 몰아쉬지 않아도, 땀을 흘릴 수 있고, 몸을 깨울 수 있었다. 산책과 요가. 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에게, 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만한 조합이 없었다.
넷째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덜 엄격해진다는 점이다. 오늘은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아도 괜찮고, 자세가 흔들려도 괜찮다. 넘어지지 않으면 충분하다. 요가는 늘 말해준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은 매트 위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삶으로 조금씩 옮겨왔다.
아침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회복은 거창하지 않다는 것. 대단해지지 않아도, 잠시 그 자세를 버텨낼 만큼의 힘만 생겨도 충분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매트를 깐다.
몸이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프지만 견딜 수 있다는 걸 이미 한 번은 알았기 때문에.
그게 요가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