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날래?
대인기피증이 왔다는 건, 아마도 그동안 내가 사람을 잘 믿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믿지 않으려고 애써왔다는 쪽에 가깝다. 기대하면 실망할까 봐, 기대지 않으면 덜 아플 것 같아서. 그래서 혼자 버티는 쪽을 택했고, 그게 강함이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버티다 보니 사람을 피하게 됐고, 피하다 보니 더 외로워졌다. 그렇게 대인기피증은 불안장애, 공황장애와 함께 아주 조용히 내 삶에 들어왔다.
109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우울증이 깊어지고, 버티는 일 자체가 너무 지쳤던 날이었다. 햇살은 짱짱했고, 바깥은 이상하리만큼 평화로웠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아이 손을 잡고 걷는 부모들. 그런 풍경 한가운데서 나는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대비가 커서, 그게 더 무서웠다. 어떻게든 버텨야 했기에 검색 끝에 109라는 번호를 눌렀다. 이런 충동이 들 때 전화하라는 곳. 전화기 너머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화를 받은 남자분은 놀라울 만큼 담담했고, 그래서 더 다정했다. 괜찮은 척 이야기를 하려다가, 지친 감정이 둑이 터지듯 무너졌다. 엉엉 울었다. 그때 그분이 물었다. 지금 몇 층에 있는지, 혼자인지, 아파트는 몇 층짜리인지. 그 질문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상황을 통제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나를 여기 붙잡아두려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내 위치를 묻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아직 이 세계에 연결돼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바람이 불었다. 정말로 개운한 바람이었다. 감정이 조금 빠져나간 자리로 공기가 들어오는 느낌. 고마웠다. 그런 관심이. 햇살을 다시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전화가 한 번 더 울렸다. 아까 그분이었다. 너무 걱정이 된다며, 괜찮다면 상담을 예약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강요가 아니라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상담센터로 향했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 쪽으로 방향을 조금씩 틀기 시작했다. 같은 동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원래는 눈인사만 하던 사이였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면 고개만 끄덕이던 관계. 그런데 옆집 언니가 먼저 번호를 물어봤고, 그게 시작이었다. 용기를 내 모임에 나갔다.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나이와 이름, 직업을 말하는 건 묘하게 긴장됐지만, 마치 처음 친구를 사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친구들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첫사랑 이야기, 결혼식에서 있었던 웃긴 에피소드, 별거 아닌 일들. 한참을 웃었다. 웃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사람을 무서워했던 게 아니라, 무너진 모습을 들킬까 봐 무서웠다는 걸.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나의 병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다들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들어주고 따스하게 나를 보듬어주었다. 우리는 전과 똑같이 별거 아닌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이미 무너진 채로도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위로였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대인기피에서 사람을 향해 나침반의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는 않다는 걸 여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위험한 것도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새벽에 연락할 사람이 없다면 109에 전화해도 된다는 사실, 울어도 된다는 사실, 몇 층에 사는지를 묻는 질문 하나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
기도 다음에 내가 붙잡은 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생각해도 꽤 잘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