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괜찮은데, 여행은 어려워

비행기를 타도 될까요?

by 김단아

공황장애와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비행기를 타도 될까요. 이 질문을 나는 정신과 진료실에서 했다. 선생님은 잠깐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타셔야죠. 폐소공포증은 결국 익숙해져야 해요. 약 먹으면 공황 안 옵니다. 약 먹고 타면 괜찮아요.” 그 말은 정답처럼 단정했고, 나는 그 단정함에 기대고 싶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가도 되냐고 묻는 대신, 힘들어도 괜찮을까요, 하고. 사실 이미 1년 전부터 예약한 비행기 티켓과 숙소라 가야만 했다.


비행기를 탄다는 건 나에게 여행의 시작이 아니라 시험의 시작이었다. 문이 닫히고, 통로가 사라지고, 뛰쳐나갈 수 없는 공간에 갇히는 일. 비행기를 타면 뛰쳐나가고 싶어질 것 같다는 생각은 늘 현실보다 먼저 도착했다. 그래도 선생님 말대로 약을 챙겼고, 정해진 시간에 먹었고,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도망치는 삶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행기보다 그 다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호텔 방. 낯선 냄새, 낯선 소리, 낯선 침대. 그곳에서 나는 여러 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대로 된 식사는 거의 하지 못했고, 하루 세 끼는 맛집 대신 룸서비스 메뉴판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다. 수영장도, 키즈 프로그램도, 여행책자에 적힌 즐길 거리들도 모두 남편과 아이의 몫이었다. 나는 방에 남아, 커튼과 벽과 천장을 번갈아 보며 버텼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두 얼굴이었다. 밖에서는 웃는 척을 했고, 방 안에서는 무너졌다.


조식 뷔페에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소금을 퍼먹듯 먹었고, 마트에서 산 매운 새우깡 한 봉지로 하루를 버틴 날도 있었다. 프링글스로 연명하던 시간도 있었고, 8일 중 4일은 숙소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서 서성이다가 불안해져서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날이 여러 번이었다. 게다가 편과 아이가 수영하러 나갈 때면 분리불안이 몰려왔다. 나를 두고 떠나는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은 늘 한 박자 늦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들에게 연락했다. 언니는 내게 “호캉스라고 생각해.” 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웃기면서도 고마웠다. 여행이 아니라 호캉스라고 부르니, 실패가 아니라 선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끝은 왔다. 정확히 말하면 마지막 이틀이 왔다. 그날 나는 숙소 문을 나섰고, 아이와 함께 놀았고, 웃었다. 여전히 불안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때 깨달았다.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면 끝이 온다는 사실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 여행에서 끔찍한 기억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동시에 가져왔다. 둘 중 하나만 가져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 여행은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다. 극복의 증명도, 용기의 서사도 아니다. 다만 공황장애와 폐소공포증,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도 떠날 수 있고, 즐기지 못한 날들이 있어도 결국 기억은 남는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여행은 늘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멀어지게 됐고, 떠났다면 반드시 잘 즐겨야 한다는 규칙도 내려놓게 됐다. 돌아올 수 있다면, 그리고 돌아온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면, 떠나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나는 또 언젠가 떠날 것이다. 여전히 비행기는 무서울 것이고, 호텔 방은 낯설 것이며, 중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견디면 끝이 온다는 것, 그리고 그 끝에는 반드시 다른 얼굴의 기억이 남는다는 것을. 그 정도면, 떠날 이유로는 충분했다.


KakaoTalk_20260122_181857030.jpg 여행지에서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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