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던다 Mar 26. 2023

뿌리염색을 할  생각이었는데…

전체 염색을 했다. 원래는 뿌리염색만 할 생각으로 미용실에 갔는데 담당 미용사에게 일종의 영업을 당해 전체 헤어 칼라를 바꾸게 됐다. 오랜동안 밝은 갈색이었는데 이번엔 완전 검은 색도 아닌 것이 푸른 색과 회색이 감도는 검은색으로 했다. 원래 내 검은머리는 어쩐지 촌스럽고 고집스런 느낌을 주는데 이번 머리색을 하니 얼굴이 좀 더 또렷해 보였다.



지난 번엔 같은 미용사에게 앞머리 펌을 했고 그 전엔 전체 커트와정수리 부분만 펌을 했었다. 매번 만족스럽다. 엄밀히 말하면 헤어도 헤어지만 미용사의 응대가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이 참에 그 미용사에 대해 자세히 풀어놓을까 한다. 이 분은 키가 크고 배도 인간적으로 퉁퉁하게 나온 남자 미용사로, 막 잘 생기진 않았는데 덩치큰 강아지상이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미용업계에서흔히 볼 수 없는 비주얼을 가졌다. 개그욕심이 있으신지 네이버 프로필 사진도 멋지게보다는 웃기게를 중점을 두고 찍은 것 같다. 이제껏 세 번의 방문 중 맨 첫번째는 할로윈 하루 전이었는데 무리하게 했다 싶을 정도로 얼굴에 잔뜩 초록칠을 한 슈렉코스프레를 하고 있었고, 두번째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다란 모자를 쓰고 현란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들으면 겉치장만 요란하다 싶은데 평소엔 멋부린 느낌없이 그냥 깔끔한 복장이다.



이 분의 최고 장점은 싹싹한 말투와 당신의 헤어스타일 그 하나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를 전후로 하여 사이사이 응대해야 할 손님이 많아 눈에 뻔히 보이게 나 하나만을 위해 애쓰는 것이 전혀 아닌데 말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첫 방문엔 별 생각 없이 막연하게 ‘내 머리 자체가 전반적으로 맘에 안 들어요. 파마할까요?’ 이런 마음으로 의뢰를 했다. ”잠시만 마스크 벗어보시겠어요? (죄송하지만) 중안부가 조금 긴 얼굴이라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레이어드를 주면 좋겠어요. 머리 위에 볼륨을 살리는 것보다 광대 옆에 헤어 볼륨을 주어 가로방향으로 시선이 가게 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 헤어 상태가 전체 펌을 하는 것보다 부분만 하는게 좋을것 같고요. 헤어 상태가 넘 나빠지면 고객님을 길게 볼 수 없으니까요“ 마스크 벗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뭔가 1:1 내 얼굴 맞춤 서비스를 받은 느낌이라 좋았고 다른 처치보다 레이어드 컷이 마음에 들었다.


지난 번 헤어컬러를 결정해야 할 땐 ”고객님 주먹 이렇게 져서 손등을 보여줘 보세요. 고객님 손등엔 노란기, 초록색, 보라 조금 보이죠? 제 손등은 고객님과 다르게 붉은기가 많아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눈동자 색깔도 잠시 볼까요?“ ‘앗 젊은이. 눈맞춤은 좀 부끄럽다만;’ 그래서 그 다음 멘트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결론은 ”그래서 고객님 헤어는 붉은기를 빼는 쪽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손등과 눈동자 기법에 나는 그만 ‘좋을대로 해 주시구료’ 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것이 근거가 확실한지 모르겠지만 한 발 다가오는 친밀감과 전문성 한 방울이 더해져 마음과 지갑이 열렸던 것 같다.



시술 중간에는 대부분 어시스턴트가 염색약을 바르고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는데도 그 사이사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샴푸 해드리겠습니다” 라던가 “전체 염색에는 커트 가격을 안 받습니다. 제가 또 커트를 기가 막히게 잘하거든요(후훗)” 라던가 굳이 그런 말 안 해도 되는데 “저 잠시 이 손님 배웅해 드리고 얼른 다시 오겠습니다”라며 몸은 저기 가겠지만 계속 신경쓰고 있다라는 메세지를 수시로 전달해 준다. 별거 아닌데도 ”음료수 드릴까요? (나는 왠지 커피가 아닌 차를 마실 연배인거 같은지;;) 자스민차? 저희 미용실 자스민차가 기가 막힙니다“ 라는 말이라던가. 정작 보면 평범한 티백 자스민차인데 마치 다나카상의 ”오이시꾸나래“ 주문이라도 걸린냥 어 맛있나? 하면서 마시게 된다.



그래서 나만 이렇게 우쭈쭈 당하면서 기분이 좋은가 싶어 그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긴 다른 아주머니-그러고 보니 주고객이 40-50대인것도 같다;;-들을 슬쩍 보니 그저 머리를 맡길 뿐인데 미소를 짓고들 있었다.



여하튼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나하나만을 생각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 그것은 아주 중요한 기술이구나. 이제껏 숱하게 만나온 미용사들은 다소간 심드렁했고,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나에게 더 비싼 시술을 권하는 것이 더 중요해보이거나 나와 자연스런 대화를 나누려 했거나 이러저러한칭찬을 해주거나 내 모발 상태를 걱정하면서 겁을 주거나였다. 웃기게도 나는 어떤 교사일까를 생각했다. 그렇고 그런 교사일까. 학생이 원하는 것은 내신성적 높이기인데 상관없는 유치한 활동을 시키는 교사인가. 별로 와닿지 않는 칭찬을 헤프게 하는 교사인가.친절하게 하는 듯하다가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 되려하면 본색이 드러나며 짜증을 내며 협박하는 교사인가. 학생의 상황은 별 관심없다는 듯 자기만족으로 수업으로 교사인가. 나도 그 미용사처럼 짧아도 마음을 쏟는 1:1 대화를 나누어 마음을 얻고, 진짜 필요한 것을 줄 주 아는 교사가 되고 싶다란 생각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영어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