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8주 차

기억이 안 나요

by 던다

주짓수 8주 차에 접어들었다. 최근에 체육관에 회원이 부쩍 늘었다. 기분 탓인지 내가 등록한 그즈음부터 거의 한주에 두세 명이 계속 새로 등록한 것 같다.

화, 목 7시부는 초급자를 위주로 수업을 한다. 그래서 그 시간에 가면 비교적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고 아주 편한 건 아니고.

역시 수업시작 30분 전, 20분 전 카운트다운 하듯이 아 ’ 내가 운동하러 간다 간다 간아아아아‘ 라는 내적외침과 함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체육관으로 향한다. 똑같이 스트레칭을 하고, 똑같이 사범님의 시범을 보며 조금 강화된 몸풀기를 한다. 어제 한 것은 두 다리를 하늘 보고 두고, 상체 몸통의 힘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이동하는 연습을 했다. 그것만으로 복근에 자극이 갔다. 잠시 남자분과 짝이 되어 몸풀기를 하는데 민망할 때마다 자꾸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 주책맞게 나왔다. ‘으악 너무 힘드네요. 잠깐만. 악.‘

이어서 기술 연습을 위해 동작을 보고 따라 하는

시간이었다. 퍼플벨트 **님이 오셔서 같이 짝으로 연습했다. 이 분은 일단 온몸에서 풍기는 테토녀의 아우라와 검게 그을린 온몸, 해변에서 태웠는지 어쨌는지 발등에 쪼리 모양대로 그을려 있었다. 스파링 할 땐 웃으면서 기술도 잘 피하고 압박도 잘하고, 추켜올린 똥머리가 망나니 머리가 되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쿨함이 있다 그래 괜히 퍼플이 아니지 싶다.

완전 쪼렙인 나에게 “상대 정강이를 누를 때 잡지만 말고 꽉 압박하세요, 움직일 때 압박을 손에서 다리로 옮긴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이어서 누르세요.” 이런저런 디테일한 조언을 해줬다. 그때마다 허둥대는 나에게 침착하게 한마디 해주는 게 고마웠다.

**님 덕분에 기술 배우는 시간은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렇다고 동작이 기억이 잘 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나 금방금방 까먹나 나 자신이 괴로웠다. 내 자식 어릴 때 하나를 가르쳐주면 둘을 까먹는 애라고 흉보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아 내가 그러고 있구나. 심지어 학습동기 가득에, 최고의 집중력을 끌어올려도 그러한 상황이라니.

스파링 시간이었다. 나보다도 최근에 오신 분이 꽤 있어서 스파링도 이젠 어찌 됐던 마주해야 했다. 그래봤자 배운 것 아주 간신히 써먹는 정도이긴 한데 그래도 스파링시간에 상대와 주먹인사를 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것부터 심적부담이 된다. 상대가 나를 막으려고 힘을 주면 나는 배운 걸 복기하기도 바쁜데 힘도 막아야 하느라 정신이 없고 이도저도 아니게 상대가 공격하면 속절없이 그냥 잡혀서 낑낑거리게 된다. 어제는 여러판 스파링으로 땀에 흠뻑 젖고 지친 고등학생과 잠시 붙었다. 뭘 할지 모르는 나를 위해 사범님이 옆에 붙어서 코치를 해주셨다. ’그르치. 거기서 빠져나와서 지난주에 배운 거 한 번 해볼까요 ‘ 하는데 순간 “말씀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요? 지난주에 배운 거라니요?”라고 정색할 뻔했다. 오늘 배운 것도 헉헉대는 나에게 지난 주라니. 그래도 엉금엉금 상대 팔목을 잡고 내 다리를 걸어. 상대 머리를 안고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올려 브리지. 하면서 입에 떠먹여 주는 지시대로 간신히 탭을 받아냈다. 으.. 잠시지만 나의 연습상대가 되어준 **님에게도 고맙고 미안했다.

사범님은 크게 기뻐하지도 크게 짜증 내지도 않을 것 같은 평정심을 가진 차분하고 인내심 있는 스타일이다. (아마도? 30살 남짓인데 어쩜 성품이 그리 훌륭하신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내가 너무 못할 때 죄송하다. 순전히 내 몸뚱이 하나만으로 저 사람의 깊고 깊은 인내심마저 뿌리째 흔들어놓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슬로우 러너의 초심자의 난관 중 하나이다. 부끄러운 나 자신도 이겨내야 하고, 세상 인자한 티쳐의 흔들리는 눈동자도 감당해야 한다.

제가 좀 못하죠?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아니에요 처음엔 다 그렇죠.” 하는 감정 노동 한 스푼을 더 얹어드릴 순 없으니까.

집에 돌아왔다. 퇴근하고 “피곤하고 졸려”하며 마룻바닥에 대자로 누운 남편에게 “나 연습 좀 할게. 편안하게 그대로 있어.”말했다.

머리를 바삐 돌려 ‘오늘 배운 1번은 이거지.‘얼추 된 것 같다. 다음은 2번. 아 하다가 기억이 안 난다. 그것도 엉거주춤했다 치고 3번은 진짜 기억이 안 난다. 눈감고 쉬고 있는 남편 가슴팍에 엎드려 “악 기억이 안 나 기억이”하면서 연습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오늘 체육관 다녀왔으니 그걸로 됐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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