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공격성

latent aggression

by 던다

주짓수는 그래플링 운동이다. 낯선 단어 그래플링은 쉽게 말해 두 명이 맞잡고 당기고 밀치는 넘어트리는 운동이다. 유도, 레슬링 등이 대표적인 그래플링 스포츠이다. 맞잡고 싸우다니. 나는 태어나 단 한 번도 맞잡고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런 의욕이 있었나 샅샅이 더듬어봐도 없다. 오히려 도대체 왜 애들은, 특히 어린 남자애들은 치고받고 (그것이 그래플링이다) 장난이든 진짜든 싸우려 드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교사가 되고 놀라웠던 점은 중학교 남학생들은 그것이 서열정리인지 특히 1학년 때 곧잘 싸우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뻔히 봐도 질 것 같은데도 “싸우자”라는 말을 쉽게 던지던 학생이 기억이 난다. 그것이 아니라면 복도 바닥을 매트 삼아 뒹굴며 놀다가 나 같은 어른이 나타나면 엉겨 붙은 채 웃으며 ”저희 싸우는 거 아니에요 노는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때로는 그럼에도 ”여기서 이러는 거 아이야“하면서 기어이 떼어놓거나 그냥 몇 마디 하고 지나가곤 했다.


이런저런 기억의 결과 도대체 왜 사람들은 특히 남자애들은 싸우려 드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한 성인 남성인 남편을 만나 그런 류의 질문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때리고 치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아하 그런 것이라면 프로이트가 말한 파괴본능 타나토스를 말한 것인가? 그럼 나는 왜 없는 것인가? 스포츠와 게임에서마저 굳이 왜 이겨야 하며, 굳이 왜 공을 쳐야 하며, 굳이 왜 공을 지정된 장소에 넣어야 하냐고 반문하던 나였다. 그래플링 종목까지 갈 것도 없었다. 남편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는 스포츠를 즐길 수 없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주짓수 첫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생각하며 긴 기간 살아온 나는, 운동도 필라테스나 요가 등을 주로 해왔던 나는 난생처음 그래플링에 몸소 체험한다. 첫 느낌은 첫째 낯설고 둘째 민망했다. 이내 상대 다리가 내 몸에 척척 감기고 내 목 깃을 당겨지고 하니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오히려 사람의 몸과 몸이 접촉하며 움직일 때 관능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구나 어렴풋이 생각했다. 이 세계의 바다에 물한울 정도 되는 체험을 했을 뿐인데 나름 충격이고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아 이래서 애들이 그렇게들 몸싸움을 하며 놀았나? 싶은 실마리를 찾았다.


지인들이 그거 어떤 운동이냐고 종종 물어본다. 여러 종류의 설명과 비유를 거쳐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자, 네가 원시시대에 살고 있어. 혼자 맨몸 맨발로 산길을 걷고 있어. 갑자기 동물이 나타나 너를 덮쳐. 도망칠 기회도 없어. 맞서지 않으면 그대로 죽어. 그냥 닥치는 대로 엉겨 붙어 싸워야 돼. 동물이 수컷이든 암컷이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무조건 맞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꽤 오래전 TV를 돌리다가 우연히 오은영박사님의 강연 한 자락을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공격성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치고받고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방어를 위해서라도 공격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나에게는 꽤나 신선했다. ‘공격=폭력‘이나 다름없이 부정적인 뉘앙스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뜻도 바로 알 것 같았다. 내가 바로 공격성 제로의, 내 자신도 방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자녀를 낳고 키우며 내가 아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성의 싹을 처음 틔어냈고 40대가 되어 어느 정도 가정과 사회에서 발언권이 생기며 그 신생의 감각을 키워갔다. 내가 화나고 억울할 때 따지는 것, 화난 제스처와 표정을 짓는 것. 상대를 응시하며 해야 할 이야기를 끝까지 하는 것. 그런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공격성(Agression)이란

나에게 주어진 옛것을 허물고

나만의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에너지 동력원

도널드 위니캇 (영국의 소아과의사이자 정신분학학자)


그런 의미에서 주짓수는 나의 공격성을 물리적으로 올려주는 운동이다. 생각을 시각화하여 현실로 만들으라는 자기계발의 논리처럼 운동은 정신력 강화를 위한 가시적이고 직관적인 훈련이지 않을까. 여전히 스킬 하나 배우고 바로 잊어 괴로워하지만 에잇 그냥 한 번 해보자 하며 상대 깃을 잡고 뭐라도 시작한다. 파트너의 도움으로 매번 어찌어찌 배워간다. 지금은 내 머리에 뉴런이 천천히 생기는 중이라 이리 서툰 거겠지, 없던 공격성이라 이렇게 차차 만들어지는 거겠지, 또 언젠가는 스파링에서 연습한 스킬을 써서 점수도 따고, 탭도 받아내는 기쁨을 느끼겠지 하면서 아주 천천히 배우고 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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