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싸움일 뿐 더 잘 살고 있니? 묻는 영화)
F1 더 무비를 필두로 나는 자체 ‘브레드피트 주간’을 선포한다. 그 기간 그의 연기와 변화와 멋짐을 충분히 만끽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신출내기 형사이자 비운의 남자를 ‘세븐‘에서 보았고, 늙었다 젊었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멋지구나 싶었던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과장된 억양과 연기로 극 중에서 가장 빛나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거칠었던 사내, 제목부터가 거친 녀석들의 거친 사내 우두머리 엘도 레인 소위도 만났다. (이 영화에서는 악역 크리스토프 왈츠 배우의 연기와 다개국어 능력이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이어 만난 조블랙의 조는 나에겐 너무 곱고 참한 총각인 데다가 저승사자 콘셉트이라 별 몰입이 안 되어 2배속으로 넘겨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영화가 폭력이 난무하는 파이트 클럽이었다.
대놓고 싸우자 하는 영화에 내가 뭔 흥미겠나 싶었다. 어떤 면에서는 브래드 측에 대한 내 나름의 도리와 (부과한 적 없는) 의무감에 봤는데, 예상외로 괜찮았다. 매우. 그냥 치고받고 싸우고 그 무리가 커졌다.로 요약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철학과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은 어떤 내가 주짓수를 시작한 이유와 어렴풋이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잭(에드워드 노튼 분)이라는 도시 남자가 있다. 자동차 리콜 검사관이다. 월급으로 집안에 근사한 가구를 들여놓아 산다. 안온한 삶인데 뭔가 무기력하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러다 우연히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남자 테일러(브래드피트 분)에게 운명처럼 이끌린다. 테일러는 막돼먹은 집에서, 제멋대로 알바를 하면서 산다. 그러면서 1:1로 싸움을 하는 파이트 클럽을 만든다. 그 클럽은 생각 외로 덩어리가 엄청 커진다.
그런 이야기이다.
첫째, 순수하게 싸움의 장을 마련하고 상대가 항복하면 바로 멈추는 몇 개의 조항이 주짓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영화에서는 서로 피투성이가 되고 이가 빠질 정도로 격하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도시인들이 문명화되면서 편리하고 안락한 삶에 익숙해지면서야 생의 기질을 잃어버리게 된 점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인류가 상당히 오래 겪어왔을 몸으로 싸우며 자신을 지켜내고 자신을 입증하기도 하고 원하는 바를 얻고 때로는 그냥 오락차원에서도 즐겼을지도 모른다. 너무 사용하지 않아 휴면기 상태의 욕망을 거침없이 끌어올리는 모임이었다.
둘째, 그렇게 싸워 몸에 맷집을 키운 잭은 직장에서 상사에게도 어렵지 않게 들이박는다. 이전이라면 말 한마디 대꾸로 힘들었을 사람이 태연하게 협상도 하고 협박도 한다. 필요하면 보는 앞에서 자해와 연기로 곤란하게 만든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체력을 단련하여 육체적으로 힘을 키우면 일상의 자잘한 정신적 힘겨루기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잭은 권태는커녕 거칠 것이 없다. 제대로 똘아이가 되었으니까.
셋째, 파이트 클럽이 커져가면서 테일러의 반사회적 행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웨이터를 하며 음식에 오줌을 누는 정도에서 시작된 만행은 여러 도시에 걸친 거대 조직이 되어 테러도 불사하게 된다. 그 쯤되니 잭은 이건 너무 많이 갔다 싶어 스톱을 외친다. 테일러는 꿈쩍을 하지 않고 그즈음 사람들이 잭을 테일러라고 부르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알고 보니 그 막 나가는 타일러는 잭의 또 다른 인격이었다. 그러니까 잭과 테일러는 같은 사람이었다. 갈래를 친 두 개의 잭은 혼란에 빠진다. 이 부분에서 이 영화 뭐지? 싶었다.
잭은 처음에는 안에 깊숙이 숨겨놓았을 야만 원숭이가 제발 움직여주길 바라고, 이후에는 그 원숭이가 통제를 잃어 제발 그만 움직이기를 바란다.
내가 영화에서 받은 메시지는 이렇다. 물질과 돈과 직업과 체면 등등에 사로잡힌 유약한 현대인이여.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져라. ‘나는 자연인이다 ‘까지 될 필요는 없지만 숨겨둔 내 안의 본능과 억압을 적당히 풀면서, 기꺼이 불편함을 겪어내면서 원시의 거친 자신으로 한 번씩 돌아가라. 그것이 스포츠든 캠핑이든 여행이든 무엇이든. 단단히 사로잡힌 안락함에서 기꺼이 탈출하라.
비행기가 급강하나 급상승할 때
나는 추돌이나 추락을 꿈꾼다.
우린 소비문화의 부산물이다.
싸워 봐야 너 자신을 알게 돼.
싸우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다.
우린 그 욕망을 드러냈을 뿐이다.
우리는 목적을 상실한 역사적 고아다.
지금 죽는다 치고 네 삶을 평가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