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두 달 반차
요즘 나의 주짓수는 여전히 허무한 모래성 쌓기와 같다. 배웠다 생각했는데 다시 백지처럼 잊고 배우고 잊고를 반복 중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첫째 달, 둘째 달은 얼른 잘 배우자는 마음이었다면 세 번째에 들어선 지금은 더 대충배우자이다. 동작도 더 대충 윤곽만 알아두자. 알아둘 필요도 없다. 그냥 이런 게 있다 정도만 알자. 그런 내려놓은 마음이다. 이렇게 허무함의 성을 반복 반복하며 쌓다 보면, 머리를 비운채 몸에 천천히 익히다 보면, 어느 임계점에 다다라 적당히 능통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의 학습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게 나에게 제법 실효성 있는 방법이었다.
중고등학교 땐 수학 문제 풀기가 그랬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잘한 게 아니고 그냥 문과 수준에서 (지금으로 치면) 1등급 받는 수준 정도랄까. 어릴 적 구구단을 늦게 외워 남은 적이 있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 산수 시험에 30-40점을 받았던 이력을 생각하면 상전벽해 같은 변화였다.
다른 하나는 오르간 치기였다.
피아노를 배운 기간은 1년 남짓, 길어야 2년이 안 됐다. 초등학교 1-3학년때에 걸쳐 띄엄띄엄 배웠다. 머리가 늦되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운 기억은 희미한 데다가 뭐가 뭔지 모르고 레슨 받는 선생님 집을 왔다 갔다 한 생각만 난다. 맨 처음 선생님은 꽤 다정했다. 내 피아노교본에 네임펜으로 엄청 크게 개명 전 내 이름을 적어준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선생님은 좀 차가운 선생님이었다. 하루는 흙이 있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곧장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갔는데 내 몸에 모래가 곳곳에 묻어있어서 선생님이 질색을 한 기억이 있다. 놀이터 다녀와서는 잘 씻어야 한다던가 학원 가기 전에는 미리 용모를 단정히 하고 가야 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던 때였다. 그게 만 6살 때이니 그럴 만도 하다.
다른 기억은 대낮 그러니까 오후 1-2시에 선생님 집에 갔는데 안방에 문이 열려있었고 바닥에 이불이 펼쳐져 있고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자고 있었다. 새벽 6시면 스위치 온되어 벌떡 일어나 새벽밥 드시고 통근셔틀을 타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하는 아버지를 일평생 보고 자란 나로서는 너무 놀라운 광경이었다. 저렇게 생활을 해도 되나? 우리 집의 금기를 본 순간이었다.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두 번째 피아노 선생님은 그런 에피소드로 기억이 남아 있다.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피아노 배우기는 그렇게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도 않고 딱히 흥미도 있지도 없지도 않았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세 번째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 이어졌다. 세 번째 선생님은 엄마에게 있어 신앙적 리더 (지금의 나로선 그냥 이빨 센 인플루엔서) 셨다. 그분은 단순하게나마 나에게 코드반주를 가르쳐주셨고 왜 그랬는지 당시로선 고가의 카시오 신시사이저를 사라고 했다. 전자건반을 누르는 감과 피아노 칠 때의 감이 꽤 달랐는데 전자건반을 접하면서 그런 차이로 익힐 수 있었다. 그런 연습이 어떤 계기가 되어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성당에서 오르간으로 미사 반주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면서 피아노 수업은 그만두고 틈만 나면 성가곡을 신시사이저로 연습했다. 딱히 다니는 학원도 없고 해서 시간은 많았다. 성당에서 미사 때마다 적게는 4곡 많게는 6곡 정도를 부르게 되는데 그때 오르간 반주가 필요하다. 피아노 1-2년 고작 배워서 반주를 하기에 쉽진 않았다. 대신 성가곡이 무한정 많지 않고 성가집 내에서만 불렀고 더군다나 그 시기에 많이 부르는 성가는 정해져 있었다. 뭐랄까 기출문제 위주로 공부하는 곡이랄까. 그렇게 그 성가집을 닳도록 연습했다. 어릴 땐 평일 낮에 빈 성당에 가서도 오르간으로 연습을 하기까지 했다.
대단한 기교가 필요한 건 없었다. 그냥 연습을 들입다 많이 했을 뿐이다. 그렇게 시작한 반주 인생은 초4부터 결혼직전인 서른까지 이어졌으니 꽤나 질긴 인연이었다.
피아노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냥 많이 하다가 얼추 잘하는 축에 된 게 하나 더 있다.
임용시험 볼 때 전공 논술 시험 준비할 때도 그랬다. 어떤 작전이나 전략보다는 관련 원서를 왕창 많이 읽었다. 그때는 워낙 간절해서 좋다는 방식을 닥치는 대로 하긴 했지만 나에게 킥이 되었던 방법은 관련 도서 다독이었다고 생각한다. 마구 파고들듯 읽지 않고 지하철로 오며 가며 수시로 자주 봤다. 자주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어떤 주제에 대해 나오는 단어와 표현, 내용이 정해져 있다는 걸 감으로 알게 됐다. 물론 시험은 운이 없으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다행히 꾀바르게 시험 준비한 사람과 달리 그저 내 방식대로 해서 결과를 거둔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
다시 주짓수로 돌아와 여전히 동작이 기억이 안 나고 스파링을 하면 맥없이 가드에 잡히고 물에 빠진 풍뎅이처럼 허우적거린다. 상대는 종종 "이렇게 쉽게 무너지면 안 되죠. 힘줘요. 버텨요"하고 나는 그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래도 아주 희미하게 몸에 조금 익어가는 느낌이 들랑 말랑 한다. 대신 웬만한 사람이라면 배울 필요조차 없이 이미 알고 있는 몸의 움직임 그러니까 상대와 싸울 때 팔이든 다리든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려야 한다던지, 몸과 몸 사이에 공간이 많으면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진다던지, 팔다리를 상대에게 안 잡히려면 얼른 멀리 둬야 한다던지, 무조건 내내 몸에 힘을 주기보다 적당히 맞서며 힘을 모았다가 기회가 오면 빠르게 한방의 기술을 해야 한다던지 그런 방법을 조금 알게 됐다.
몇 주 전인가 운동 맛보기를 위해 왔는지 하루 이틀 얼굴이 보였던 체대 학생이 있었다. (온몸이 땅땅한 그분은 유도했을 시절의 김신영이 연상되는 외모였다.) 그 학생이 “주짓수는 다른 운동에 비해 타고난 운동 신경보다는 오래 하는 게 중요한 운동 같아요.”라고 말했다. 무심결에 한 얘기겠지만 난 그 말이 무척 희망적이었다. "아 그래요?" 생각 없이 오래 하기라면 내 전문 아닌가. '결정적 난관이 없는 한 가늘고 길게 해야지' 아주 아주 느슨하게 결심답지 않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