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그리고 나를 지켜준 사람들

by 다나약사



직장을 퇴사하다


나는 다행히도 '약사'라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기에, 투병으로 인한 공백기가 생기더라도

건강만 회복된다면 재취업에 대한 큰 걱정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망설임 없이 직장을 내려놓고, 치료에 온전히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암으로 인한 자각 증상이 특별히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치료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나오고 싶었다.

국장님께는 “후임자를 최대한 빨리 구해 주시면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먼저 말씀드렸다.


며칠이 지났다.

당시는 '코로나19 오미크론'이 정점을 찍던 시기였고, 내가 일하던 약국은 하루에도 백여 명의 확진자가 오가는 이비인후과 메인 약국이었다.

그날도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약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확진자에게 복약지도를 하고 결제를 위해 그분의 카드를 받는 순간.... 손이 덜덜 떨렸다.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혹여 내가 감염되면 암 치료 일정이 전부 미뤄지고, 그 사이 암이 커지거나 전이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땐 병원 방침상, 코로나 확진자는 진료는 물론 내원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런 나의 상황을 알게 된 약국장님은 “약국은 어떻게든 굴러가니까, 괜찮으면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 혹시나 코로나에 감염돼서 치료를 못 받으면 내가 너무 미안할 것 같다”라고 하셨다.

죄송한 마음에 망설였지만, 결국 그렇게 갑작스럽게 퇴사하게 되었다.




실업급여


약국은 소규모 사업장이다 보니 병가나 휴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냥 다니거나, 아니면 그만두는 것이다.

나는 암 치료 때문에 스스로 퇴사한 거라, 실업급여는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발적인 퇴사라도 '질병'때문이라는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나오는 건 아니고,

4대 보험을 납부하며 일정기간 이상 근무한 회사에서 '질병으로 퇴사'한 뒤,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에서 구직활동을 시작해야 지급된다.


즉, 치료 중에는 받을 수 없고, 치료가 끝난 뒤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하고 나면,

구직활동을 하는 기간 동안 최대 8~9개월까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암 치료를 위해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면, 미리 필요한 서류들을 알아보고 받아 두는 것을 추천한다.




임밍아웃 말고, 암밍아웃


대학병원 정밀검사 결과 암은 확정적이었고, 치료 일정도 나왔다.

직장도 쉬어야 하고, 보호자도 필요하다.

이제는 직장,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음을 알릴 시기가 온 것이다.



- 회사에 말하기

암 진단을 받았던 그날, 점심시간에 “병원에 잠깐만 다녀오겠다”라고 하고 나왔던 터라 다시 약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퉁퉁 부운 눈으로 일 할 자신이 없었다. 약국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날은 곧장 퇴근했다.

하룻밤 사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음날 평소처럼 출근했지만, 직원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나는 그저 담담하게, 사실 그대로 다 말해주었다.

아픈 건 죄가 아니고, 감춘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기에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 후 퇴사를 했고, 치료를 마치고 1년쯤 뒤

나는 다시 이 약국에 재취업해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약국장님과 직원들이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시니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 가족에게 털어놓기

동네 의원에서 조직검사를 받던 날, 피멍이 시퍼렇게든 가슴이 아프고 서러워

나는 가장 먼저 엄마를 찾아갔다.

때문에 조만간 결과가 나올 걸 뻔히 아는 엄마에게 암 진단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엄마는 "네가 왜 암이냐.."며 한동안 눈물만 흘리셨다.

내가 너무 미안해서, 괜히 아픈 게 죄스러워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을 다잡고
“괜찮아. 같이 이겨내자. 무조건 나을 수 있어.”라고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시댁 식구들은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며느리가 병든 상황에서도

남편에게 “와이프 잘 챙겨줘야 한다, 곁에서 잘 보살펴야 한다”며

단 한마디의 부담도 주지 않으셨다.


이후 친척들에게도 천천히 진단 사실을 알렸다.

내 주변엔 암 환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털어놓고 보니 아빠의 동생, 숙모의 언니, 또 누군가도 암을 겪었더라는 얘기가 이어졌다. 그동안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관심이 없었을 뿐, 내 주변에도 암 경험자는 많았던 것이었다.



- 친구와 지인들에게 알리기

가까운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암밍아웃’을 했다.

암 경험자들 사이에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진단사실을 털어놓았다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경험담이 적지 않다.

나 역시 누구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또 그들의 반응에 내가 상처받지는 않을지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울 때 남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처럼,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먼저 다가와 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암 진단 소식을 SNS 계정에 올렸다.


기대했던 사람에게서 전화 한 통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마음을 오래 붙들지 않고 금세 놓아버릴 수 있었다.

반면, 나보다 더 속상해하며 울어 준 친구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사람이 먼저 연락해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암밍아웃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주었다.

친구들은 항암치료가 끝난 나를 위해 여행을 다녀오라며 좋은 호텔을 예약해주기도 했고, 몸에 좋은 음식이나 차, 심지어 돈을 보내주기도 했다. 종교가 있는 친구들은 각자의 신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날 보러 와준 친구도 있었다.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치료가 끝난 지 오래됐지만 지금도 이따금씩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 마음을 베풀어준 사람들에게 꼭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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