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사치
우리들의 사치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우리는
서울의 외곽을 따라 동그란 얼굴이 됐다
광화문 2번 출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여러 겹의 옷을 입고
나의 바닥을 들키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언젠가부터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불문율이 생겼고
누구나 올 수 있는 장소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쓸모 있게 만들 줄 알았다
사계절 내내 삐걱거리는 녹슨 뼈마디와 한없이 깊어진 목구멍에 대한 연민
밤새 만지작거렸던 빗물에 대해
우리들의 불면은 심각하지 않았으므로
연두색 완두콩을 까고
냉장고에서 늙어가는 고등어를 버리고
새벽이슬을 채취하며
책의 밑줄에서 묵은 벌레들을 골라냈다
끝까지 가 본 막다른 골목을 언급하지 않아도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를 사랑했고
조각난 피자 게수에 맞춰 식욕을 조절할 줄 알았다
시들함을 씹어 다소 높아진 체온으로 서로를 안아줬고
몇 달을 한꺼번에 쓴 사치를 접어 가방에 넣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