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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현 Oct 19. 2023

2023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저녁

 저녁     

허공만을 손에 쥐고도 

발버둥 치면 어디든 가 닿을 수 있었다


헐렁해진 입안에선 하나 남은 송곳니가 

남은 이생을 악착같이 꾹꾹 누르고 있다 

    

경사진 하루가 살을 파고들고 심장을 찔러대고 갈비뼈 근처까지 내려오더니 

밤새 뿌옇게 흐려진 두개골까지 쿡쿡 찌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앞마당이 전부인 이승을 내다봐도 인기척이 없다.

저기 문 앞의 발자국은 누구의 것일까

     

과꽃이며 수국을 키우던 울안 온기는 자취를 감추고 

까치밥으로 남은 붉은 홍시는

지나가는 인기척에도 휘청거렸다 

    

한나절이면 수십 년 내린 눈도 삽시간에 녹일 듯

늦은 햇살이 얼굴에서 시간을 재고 있다  

   

석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축대가 무너졌다     

창가에 어둠이 쌓이고 둥지 잃은 새들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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