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심 네 번째.
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함께 보낸 시간 떠나 보내기.
이번 편을 쓰는 이유.
내가 브런치 심사를 신청하며 쓴 글쓰기 이유가 있다.
나는 때때로 내 삶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을 가지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때도 있다. 하지만 때때로 아니 종종, 끊임없는 도돌이표를 찍듯이 절망적이고 회의적인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날들도 있다.
일기장에 글을 쓸 때는 그런 회의적인 도돌이표의 생각도 여과없이 써내려 가는 한편, 남들이 볼 수 있는 브런치나 다른 SNS에 글을 올릴때는 어느 정도 균형잡힌 생각을 쓰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뇌가 조율을 거치며 생각이 균형을 잡아간다.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 방향성을 스스로 잡아갈 수 있는 것이 글쓰기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일기쓰기에서 그런 수익을 얻기도 한다.) 오늘은 이처럼 뇌의 조율을 위한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친구 A, B 그리고 C
나에게는 친하게 지내며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친구가 3명 있었다. 그 중 나와 같은 백수였던 친구 B, A 두명은 각각 2~3년째 교류하는 관계였고 최근 1년간은 매주 만나 교류했다. 친구와 나는 나의 집 혹은 카페에서 함께 같은 취미인 보드게임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6년째 교류해오던 나머지 한명 친구 C는 직장인이었다. 그 친구와는 그 친구를 알아온 6년간 한달에 한번씩은 꼭 만났다. 그리고 한번 만나면 반나절 이상은 밀린 수다를 떨거나 새로운 곳으로 놀러다니곤 했다.
그들 각각과는 단순히 취미를 즐기고 관심사만 나누던 느슨한 관계는 아니었다. 만나는 시간들 동안 서로의 딜레마, 과거, 고통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과 고민을 공유했다. 정기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 안에서 함께하는 즐거움과 삶을 응원하는 위로를 느꼈다. 이 세 친구들과의 정기적 만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게 큰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들은 내게 동네 친구이자 사회적 안전망이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일어난 변화
그런데 이 친구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매주 만나던 친구 중 한명인 A는 심하게 앓던 우울증(어려움)을 극복함과 동시에 지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친구인 B도 나와 게임 한판을 하기 보다는 본인의 다른 일들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둘에게는 각자 애인이 생겼다. 나머지 친구인 C도 회사일이 바빠지기 시작했고 역시 애인이 생겼다. 그들은 친구인 나와의 관계보다 일 그리고 각자의 애인과 관계에 더욱 집중했다. 특히 6년동안 한달에 한번은 꼭 만나던 친구 C와의 만남은 반년 가까이 되도록 이뤄지지 못했다.
우리는 이전처럼 만나서 놀거나 대화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교류하던 때에는 각자 삶을 살면서 안고 있는 고민과 각자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공유했다.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했고 그 고민을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토론을 즐겼던 우리는 가치관과 생각을 공유하며 대화를 통해 그 생각을 공고히 하거나 발전시켜 나가곤 했다. 서로에게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때로는 한 주제에 대해 같은 감정을 느끼며 깊은 공감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바빠진 뒤로는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사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그들이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모두의 상황은 변했던 반면, 나의 일적, 연애적, 고민하던 어려움(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의 상황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나혼자 남겨진 허전한 기분을 느꼈다. 친구들에게 나의 기분을 솔직하게 이야기 했지만 그다지 공감받을 수 없었다. 친구라고 해서 꼭 자주 만날 필요는 없고 2~3년에 한번 만나도 반갑게 만날 수 있는것이 친구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다. (6년동안 매달 교류하던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친구 그리고 연결점.
친구와 하루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10대 학창시절, 20대 초반 대학시절을 넘어가 사회로 나가게 되면 각자의 생계에 더욱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나 또한 생계를 이어가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이해관계가 아닌 관계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금새 사라지고 마는 것 같다. 공통된 직장, 취미, 모임, 특별한 연결점이 없으면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나가기 힘들다. 서로가 이해관계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삶에 현실적인 영향을 주는게 아니라면 지금의 현실 생활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한편 나는 이런 관계에는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친구들과 몇년 동안 깊고 잦은 교류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결정
어쩔수 없이 내게는 친구들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했다. 자신이 얻을 가치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본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정신적 가치를 얻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했고, 나는 그에 밀려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쩌면 나는 친구들처럼 더욱 큰 가치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실감을 크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친구'가 '그냥 친구' 혹은 '지인'으로 변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더 씁쓸한 일도 많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본다. 매일 매일 세상에서 벌어지는 씁쓸하다 못해 인류애가 상실되는 쓰디쓴 일들이 떠오른다. 내 아이디가 단밤인 이유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단밤에서 왔다. 박새로이가 말한다. 내가 사는 세상은 너무 쓰다고. 쓰린 밤에서 내 삶이 조금만 더 달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게 이름을 단밤으로 지었다고 말이다.
오늘 쓴 글에 대한 생각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글을 쓰면서 정리해 보기 위해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작아보이기도 했다. 특별한 관계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던 내 오랜 시간들이 허무해지는 것은 나에게 참 슬픈 일이었다.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결국 계속해서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것은 내 자신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온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