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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헤는나무 Feb 05. 2021

등갈비 김치찜처럼 오래 끓여야 맛난 것

집콕 생활이 익숙한 요즘이지만 신경 쓰이는 게 하루 세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다. 남편 출근 시간에 맞춰 아침을 준비하고는 다시 늦잠을 자는 딸아이 밥을 챙겨준다. 혼자 있으면 하루 한 끼 라면으로 때우려는 딸아이의 성향을 알기에 되도록 식사를 챙기겨준다. 그러다 보니 하루 네다섯 번 밥상을 차린다. 남편과 딸아이 식성도 다르다. 아침과 저녁식사에는 국 찌개를 준비하고, 딸아이 밥상은 김치볶음밥 같은 간편식이나 고기반찬을 준비하는 편이다. 여태 아침 식사를 걸렀던 나도 퇴사를 하고는 밥을 더 잘 챙겨 먹는다. 이래저래 밥하고 설거지 하는 밥설밥설을 하루라는 게임의 퀘스트다.


매일 먹는 밥과 반찬인데 물가가 장난아니다. 계란 한 판이 8천 원이나 하니 마트에 가도 식재료가 마땅치 않다. 겨울철 채소류는 신선도에 비해 가격도 높아 들었다 놨다 한다.

막상 식탁 위에 올리면 젓가락질 몇 번에 끝날 반찬 한 가지도 사실은 이렇게 손이 간다.

재료를 사다 다듬고, 씻고 자르고, 지지고 볶고......

오늘은 마트를 한 바퀴 돌다 등갈비를 한팩 사다 김치찜 한 솥을 끓였다. 된장을 살짝 풀어 양파, 파를 넣고 김치와 데친 등갈비를 넣고 푹 끓이니 고기가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


부드럽다 못해 흐물흐물한 김치를 찢어 밥 한 술 뜨며 한국인의 입맛은 이런 건가 싶다.

푹 끓인 갈비탕, 설렁탕, 육개장 같은 요리가 유난히 많다.

그러다 생각이 '인생도 김치찜 같은 거지.'로 흘러간다.

뭔가 설익어 알듯 말 듯할 때는 좌충우돌 자갈밭 같다가, 걷다 보면 겸손을 배우고 속도를 줄이게 된다. 고기에 스며든 양념처럼 살짝 세월의 때도 묻어 손과 얼굴의 주름이 빛나 보인다.


너무 날것이면 질기지 않은가? 기름기 돌도록 푹 익어 한번에 뜯기는 갈빗살처럼 유연하고 나긋나긋해지면 중년의 삶이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김치찜의 짭조름한 맛처럼 간이 밴 추억이 있다는 것도 썩 괜찮은 것 같다. 싱거운 것보다는 단짠단짠이 새록새록 기억에 남지 않은가? 아이들과의 달콤한 추억부터 돈 때문에 겪은 짠내 나는 생활이 김치찜과 비슷하다.


거기다 등갈비 김치찜을 먹는 식사시간은 규율도 서열도 필요 없는 시간 아닌가? 길게 찢은 김치에 밥을 올려 스푼 뜨고,  등갈비 살을 뜯어 맛본다. 남은 밥은 국물에 말아 슥슥 비벼 먹으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평등한 시간이다.


20년, 30년 뒤 냄비 속 김치찜처럼 푹 익어 부드럽게 술술 넘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김치찜 국물이 밥알에 스며들어 감싸 안듯 포용하는 어른이었으면 한다. 등갈비처럼 야들야들 유연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김치찜의 가성비처럼 내 노후도 내실있 실속있길 바란다.


잠깐 중요한 걸 놓쳤다.

김치찜은 역시 김치가 관건이다. 김치 맛이 요리 맛을 좌우한다. 맛있는 김치는 어느 것을 만나도 맛있는 요리가 된다. 설사 요린이인 딸아이가 해도 맛있는 김치볶음밥이 될 테다.

김치찜의 메인 재료가 김치이듯 인생의 주인공인 내가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깜박했다. 삶이 김치찜이라면 나는 숙성한 김치여야 한다. 남의 다리 긁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본질을 놓치지 말자. 중심을 지키며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인생의 맛을 살린다는 생각을 하며 저녁 설거지를 마쳤다.


내일도 등갈비 김치찜으로 한 끼 식사를 하며 오늘과 또 다른 맛에 감탄할지 모른다.

앞으로 등갈비 김치찜을 해 먹을 때마다 나는 김치처럼 숙성했는지, 김치찜처럼 부드럽게 익었는지를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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