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거 할 줄 아세요?

실력 있는 교사란

by 단비

한 학생이 대뜸 물었다. 학생의 손에는 어렵기로 유명한 생명과학1의 유전 문제가 들려 있었다. 기분이 묘하게 상했다. 내 반드시 이 문제를 학생 앞에서 멋지게 풀어 보이리. 호기롭게 볼펜을 들고 학생 앞에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빨리 풀어야 한다, 맞게 풀어야 한다, 설명도 잘해야 한다……. 학생의 시선을 너무 의식했던 탓일까. 문제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감도 잘 안 잡혔다. 긴 시간을 끙끙대다가 결국 학생에게 말했다. “쌤이 이거 찍어가서 따로 풀어볼게. 다음 쉬는 시간에 쌤 찾아올래?” 학생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네.”하고 대답했다. 그 미소와 대답이 마치 나를 비꼬는 것만 같았다. ‘이것도 못 푸세요?’라고.


나는 누구보다 생명과학을 좋아했고, 잘 가르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학생 앞에서 풀이가 막히는 순간만큼은 늘 무너졌다. 당황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더 크게 실수하고, 괜히 자존심만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면 또 불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학생들이 나를 실력 없는 교사로 기억하면 어떡하지.


*


그런 나를 놀라게 한 선생님이 있다. 학생이 어려운 문제를 가져오면, 그 선생님은 솔직하게 “이건 어렵다,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선생님을 신뢰하고 따랐다.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에게 물으면 답이 나올 거라는 학생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는데도, 왜 그 선생님은 실력 없는 교사가 아니라 존중받는 교사로 기억되는 걸까.


의문이 길어지기만 하던 어느 날, 나는 용기 내어 그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지식의 누적을 묻는 문제라면 선생님은 학생보다 언제나 한 수 위죠. 하지만, 복잡한 추론, 계산 문제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어요. 특히나 우리는 설명을 위해 풀이 과정을 꼼꼼히 보여주려 하니까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고요. 학생이 갑자기 물어보면 못 풀 수도 있는 게 당연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문제를 잘 푸는 것만이 교사의 실력은 아니에요. 문제를 못 풀었다고 해서 교사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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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위로를 들으며 나는 그제야 알았다. 학생들 앞에서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 보이려 애쓴 건 순수한 열정이 아니라 자격지심이었다는 것을. 실력이 부족해 보일까 봐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오히려 그 태도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초라함을 감추려는 몸부림이 학생들에게는 차갑고 경직된 모습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두려워하던 ‘실력 없는 교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교사보다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기에 교사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가르치는 힘에 있다. 학생은 교사가 정답을 알려주는 순간보다, 문제 푸는 과정을 함께 밟아 나가는 시간 속에서 훨씬 성장한다. 교사는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해결사가 아니라, 고민을 길게 끌어내고 그 안에서 배움의 힘을 키워주는 촉진자다. 교사의 본질적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답안지가 아니라, 끝까지 생각하고 도전하도록 이끌어 주는 경험이다.


*


그래서 이제는 조급해하지 않는 교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문제를 조금 못 풀어도 괜찮다. 대신 학생의 성장을 돕는 훌륭한 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자격지심에 휘둘려 자존심만 내세우는 교사가 아니라, 진짜 실력 있는 교사가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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