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와 나의 서열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래요. 강아지들도 다 알아요. 영리해요.”
어느 날, 수의사 선생님이 내게 건넨 말이었다.
단비는 나에게만 투정을 부린다.
하지만 수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몸을 바짝 움츠리고 긴장한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단비는 안다.
그래서 원하는 건 다 하려고 한다.
실수로 과자봉지라도 떨어뜨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물고 달아난다.
내가 다가가 뺏으려 하면 눈빛이 싸늘해지고, 작은 몸에서 낮은 으르렁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놈!’ 하고 호통치면, ‘내가 뭘’이라는 표정으로 억울하게 맞선다.
그런 녀석이 다른 사람이 살짝만 ‘이놈’ 해도 배를 까고 얌전하게 엎드린다.
배를 드러내고 헤헤 웃는 그 모습이 얄밉다.
가장 편하고 안전한 존재에게 가장 거칠게 굴 수 있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걸 자주 잊는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예외는 없다.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기 쉽다.
“우리 사이에 이것도 못해줘?”
익숙함은 요구를 정당화하고, 그 정당화는 자연스레 권리가 된다.
결국 우리는 은연중에 룰을 만들고, 서열을 나누고, 관계는 그렇게 고착화된다.
이게 단비가 정한 우리 사이의 서열일까.
그 작은 몸에 깃든 영리함이 야속하면서도, 결국 내가 그만큼 허락해 준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