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가 해질수록

마음의 무게도 해져서

by 단비

우리 집 베개는 하루도 멀쩡한 날이 없다.

내 하루의 모든 생각의 무게를 견디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단비는 그런 나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는 존재다.

매일 밤, 시끄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베개 위에 누우면 단비는 어김없이 쪼르륵 내 머리맡으로 와 베개를 뜯기 시작한다.
머릿속이 시끄러운 게 아니라, 정말 머리가 뜯겨 나가서 딴생각할 틈이 없다.
손을 휘저어 단비를 말리다 보면, 어느새 단비와 한 몸이 되어 잠들어 있다.

베개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누렇게 변하고 해졌다.
옆구리가 터져 솜이 삐져나오고,
어느 날은 단비의 토사물에서 사료색으로 물든 솜뭉텅이가 나오기도 했다.
베개를 뜯고 또 뜯다 못해, 그 안의 솜을 질겅질겅 씹어 삼켰던 것이다.
결국 집 안의 베개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가끔은 내 마음의 무게도 그렇게 질겅질겅 씹어
다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하나둘 씹다 보면, 그 무게도 조금은 줄어들까.

나는 자꾸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버겁게 짊어지려 했다.
타인에게 ‘모성애’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붙이며,
감당하지도 못할 마음에 마음을 썼다.

자신의 불행을 마구 쏟아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왜 그 사람에게만 유독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까,
문득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엔 안쓰럽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없는 마음도 끌어내 서툰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늘 같았다.
“너의 불행은 비교도 안 돼.”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들은 여전히 과거 속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사실, 과거를 떨쳐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종종 그 안에 갇혀 살아가니까.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겨우 현재로 돌아오곤 한다.

그들도 어쩌면, 그저 어디엔가 감정을 토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필 그 곁에 내가 있었던 것뿐이다.

우리는 나약해지지 않으려
아이러니하게도 나약한 방법을 택한다.

그래도 부디,
견뎌낼 수 있는 아픔만 주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아픔마저 언젠가 단비의 따뜻한 체온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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