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울분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세계가 생기는 일이었다.
"요즘 청년들은.."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책임감이 없다.”
많은 어른들이 쉽게 단정 지었다.
늘 “네”라고 대답하며 버티던 청년은
어른들이 미뤄둔 일까지 떠안고
결국 무능력한 자신을 탓한다.
“아니요”라고 목소리를 내던 청년은
어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건방지다는 이유로 배척당한다.
굽힐 때 굽히고,
내야 할 때 목소리를 내는 데 길들여진 이들은
“잘한다”는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날것’의 청년들은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
너무 쉽게 데인다.
어른들은 말한다.
“재떨이가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기억 속 깊이 묻어둔 아픈 무용담을
희화화하듯 꺼내놓지만,
잊지 않았다는 건 결국 잊혀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젊은 날엔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자식에게는 편히 살라며 적성에도 안 맞는 공부를 강요하고,
남의 자식에게는
“요즘 애들은 편한 것만 하려 한다”며 나무란다.
요즘 애들은 무섭다면서 권위를 앞세우고,
열정을 말하면서 선택적으로만 허용한다.
이 모순은 청년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청년은 어른에게서 배운다.
그리고 청년의 좌절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무너뜨린다.
그러니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신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날카로운 시선을 잠시 거두어 주길 바란다.
청년들의 울분이
유난히 서글픈 날이었다.
단비를 혼자 두고 마주하는 사회가
고작 이런 모습이라는 사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