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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Feb 25. 2020

70 - 열여덟 그 아이에게 부치는 편지


지난 설 명절에 남동생네와 본가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아빠가 사용중인 동생 침대 밑 서랍에서 해묵은 물건을 정리했었다. 거기서 아주 진귀한(?) 이 나왔으니, 동생과 나에겐 보물을 캐낸 듯 기뻤카세트테이프였다. 


고등학교 2학년 우리 반에는 음대 작곡과를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기획 아래 반 친구들이 각자 가사를 쓰고 그녀는 작곡을 해서 우리만의 앨범을 만들었다. 개척교회에서 음향과 드럼 연주 등을 하던 내 남동생과 친구가 합이 잘 맞았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동생이 악기 및 장비 세팅과 녹음까지 돕고 나중에 공테이프 케이스에 끼우는 종이 북클릿 편집과 디자인까지 맡았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인생을 돌아보니 그만한 결과물이 손에 다시 쥐어진 것 자체가 마법 같고 행운이다. 공식적으로 발매된 적이 없어 아무도 모르는 음악이지만, 참여한 모두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 아마 테이프를 하나씩 나눠가졌으니 작업에 함께 했던 친구들이 이 기억을 어떻게  보관하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한 가사집이 빛바랜 것처럼, 막상 테이프는 찾았어도 재생할 기기가 없던 것처럼 현재에서는 그저 아득하고 아득할 뿐.


동생이 테이프를 챙겨갔었는데, 놀랍게도 파일로 변환을 해서 오늘 카톡으로 전송을 해주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가사를 쓰고 직접 부른 노래 2곡부터 들었다. 여전히 만나는 한 친구에게 그녀의 노래도 깜짝 선물로 보냈다. 마이크를 돌아가며 여럿이 부른 곡까지, 그 시절 그 노래가 지금의 나에게 반가운 편지처럼 날아와 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셀 수 없이 썼다 지웠다 하면서 가사를 쓰던 스프링 노트가 기억난다. 지금은 생각도 안나는 <젊은이의 양지> 드라마 속 윤배와 석란 캐릭터의 감정에 깊이 빠져 그와 그녀의 마음을 느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 작업들이 끝난 뒤 고3이 되어서도 작곡과를 지원하던 그녀를 꽤 많이 부러워했다. 질투에서 끝나지 않고, 중학교 음악 교사였던 아빠에게 딸을 왜 음악을 시키지 않았냐고 말도 안 되는 방황 속에 서먹했던 일도 있다. 나중에야 아빠의 속사정을 들었고, 죄송한 마음을 편지로 써 드린 것도 생각난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으며 가장 순수한 것에서 창조된다고 믿는다. 그 시절 가장 순수했던 아이에게, 오늘의 내가 이런 글로나마 답장을 보낸다.

너는 충분히, 아름다웠노라고...






( +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아름다웠던 그 아이의 노랫말을  공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

  


너만의 나 (윤배의 테마)


끝없이 지나간 세월 속에서

내 운명은 오직 네게로 간다는 걸

나 아닌 한 사람에게만 가는 너에게

나 오직 너뿐이란 걸

얘기하고 싶었어

절망 속에서도 내겐 네가 빛이었고

나에게 힘을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너를 내게 기대게 해주고 싶었어

사랑함으로 날개를 다친 가엾은 나의 작은 새

너를 내게 보내어 줄 수만 있다면

그래 이젠 날아와 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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