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펑펑 내리던 2월 어느 오후.
러브홀릭이 부르는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노래가 흐른다.
오래전 일러스트 페어에서 엄마를 생각하며 사둔 엽서를 꺼낸다.
3년 뒤면 칠순인 엄마 생일 축하 메시지를 또박또박 쓰다가 그만, 왈칵 눈물이 난다.
급기야 뭐가 그리 서러운지 엉엉 소리 내서 울기 시작한다.
열린 거실 창문 사이로 함박눈이 너무 예뻐서, 그래서 더 크게 운다.
엄마는 나를 스물여섯에 낳았다. 생각해 보니 그 나이 때 나는 회사 입사한 첫 해를 바짝 긴장하며 보냈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 젊은 부모님을 둔 것이 감사하다는 걸, 철이 들면서 깨달았다. 여행을 같이 다니기에도 여전히 건강하시고, 휴대폰 등 더 가까운 느낌으로 소통할 수 있고. 또 이 세상에서 함께 할 시간이 다만 얼마라도 더 길거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외할머니는 딸 아홉을 줄줄이 낳았다. 엄마는 여섯째 딸로 이름은 ‘여인’이다. 성씨도 이름과 참 잘 어울려서 우리 엄마 이름 세 글자는 정말 시처럼 이쁘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나도 나이 들어 중년에 접어드니, 엄마 이름이 부러울 정도로 맘에 든다. 이모들 중에는 ‘여자’도 있고, ‘여신’도 있다. 딸 부잣집 외가의 추억은 셀 수 없이 많다. 언제 어디를 가도 내 삶은 북적거리는 여성들 속에 있었다. 아흔 후반 줄에 편안하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장례식은 곡 소리 대신 잔치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제, 첫째 큰 이모부터 작별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한때 엄마가 건너 건너 소개해 준 선자리가 안 좋게 마무리됐을 때, 엄마랑 카톡으로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아니, 나도 엄마도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거다. 엄마는, 내가 또 살갑지 못해 남자가 돌아섰을 거라고 시집을 갈 거냐 말 거냐며 나를 타박했다. 그즈음 해서 엄마와 아빠의 연애결혼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던 터라 나도 엄마에게 막말을 했다.
“아빠 그렇게 잘 생겨서, 한눈에 반해서 시집가 평생 주부였던 엄마가 내 사정을 어떻게 알아?
30대 후반까지 힘들게 돈 벌어서 여자 혼자 사는 내 심정 엄마가 이해나 되냐고!!!”
우리는 스물 다섯 터울의 친구 같은 모녀 사이를 꿈꾸었지만, 한 여성으로서 개별적인 삶을 놓고 봤을 때는 서로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엄마는 싱글인 나의 생활과 가치관을, 나는 엄마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아무리 터놓고 대화해도 접점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엄마 생일은 정월 대보름 며칠 뒤다. 음력이라 매년 캘린더에 새로 체크를 해두는데, 오곡밥과 부럼 먹는 시즌이 때맞춰 돌아오니 까먹지 않고 챙기기는 쉽다. 올해도 엄마 생일 파티를 언제 하냐며 날짜를 맞추는데, 월요일만 쉬는 동생네와 부모님 일정이 엇갈려 생일 일주일 전에나 미리 가족 모임을 하게 되었다. 보통 어린 조카 때문에 아웃백 같은 곳에서 외식도 하는데, 마침 대보름이니 엄마가 나물 반찬에 집밥을 차리겠다고 했다. 생일의 주인공이 고생을 자처했으니 올케도 나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가족 파티는 파티대로, 어쨌든 나는 딸이고 현재 자유시간도 많다 보니 생일 당일에 외로이 있을 엄마가 신경 쓰였다. 나만 다시 인천으로 와 무언가를 챙겨드려야 할 것만 같은 거룩한 부담감. 그런데다 하필 바로 위 다섯째 이모가 칠순을 치르셨는데 그 집 사위가 꽤 큰 단위의 돈을 쾌척했다는 소식이 이모들 사이에서, 엄마가 올케에게, 올케가 나에게 퍼 날라졌다. 엄마의 칠순을 위해, 그보다 1년 앞선 아빠의 칠순까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온 것이다.
식구들끼리 날짜를 정하는 것부터 그 사이에 벌어진 모든 상황과 근심까지, 이상하게 어느 해보다 머리가 복잡해졌고 그게 내심 불편했다. 가족 파티를 며칠 앞둔 어느 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터벅터벅 올라오는 길에 갑자기 울컥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엄마의 생일파티는 몇 번 남았을까.
1년에 한 번뿐인 생일. 엄마가 80까지 산다면 열 두세 번, 그 이상 건강하게 오래오래 산다 해도 스물몇 번 밖에는 남지 않은 것이다. 아니 사실 몇 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막연하게 엄마 사실 날이 몇십 년 남았지... 하던 것과는 다른 차원. 순간 가슴이 탁 막히면서 먹먹하고 아득해졌다. 엄마의 엄마를 하늘에 보내드린 뒤로 종종 상상해 보는 내 엄마와의 이별 장면.
그날도 쏟아지는 눈을 보며, 우리 엄마 주제가 같은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들으면서, 끝까지 가 본 적 없는 그 작별 순간을 생각하다가 눈물이 쏟아졌다. 마지막 씬은 모르겠다. 더 이상 그려지지가 않았으니까. 그냥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실컷 울고 나서 엽서를 채워나갔다. 엄마의 생일 당일에 나는 엽서를 들고 혼자서 인천에 갔다. 찐하게 안아드리고, 진심을 다해 내 사랑을 표현했다.
윤여인 씨,
내 엄마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복에 겨울만큼 넘치는 엄마의 사랑을 가끔은 귀찮다고, 그만하길 됐다고,
엄마도 힘든데 적당히 하라고 툴툴거린 거 미안해...
내가 엄마가 되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니 못난 딸 이해해 줘.
나도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게.
엄마의 남은 인생은 윤여인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p.s. 윤여인... 나는 이 이름이 너무 예쁘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