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시집을 못 가지

대사&지문

by 일무

혼자 부여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잔뜩 허기진 상태로 찜해 둔 맛집을 찾았으나 문이 닫혔다. 차선책으로 TV 방송에 나왔다는 유명 식당엘 갔다. 장사 이력이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1인이나 2인석이 없었다. 만석 직전에 겨우 자리가 났는데 4인 테이블 2개가 딱 붙어있는 위치였고, 3명 자리를 비워둔 채 큰 식탁을 차지하고 앉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쌀쌀하던 차에 나온 뜨끈한 삼계탕을 허겁지겁 먹는 중 옆 테이블이 비워졌고 새 손님이 채워졌다. 나는 모자를 눌러쓴 채 고개도 돌리지 않아 바로 옆 그들을 똑바로 보진 못했지만, 어린아이 둘과 함께 온 내 또래 부부인 듯했다. 마침 남편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바로 내 왼팔 옆에 앉았다.


열심히 뼈를 발라내며 반찬으로 나온 닭똥집 튀김도 맛있어서 만족스러운 식사 중이었다. 시끌시끌한 분위기에도 바로 옆 부부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렸다. 입으로는 먹는 것에, 귀로는 자연스레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들은 치킨과 똥집 튀김을 먹기 시작한 듯했다.

“이 정도 맛집인데 서비스 어쩌고 하면서 불만을 가지면 안 되지.”

남자가 와이프에게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있었다.

“누가?”

“있어. 되게 까다로운 여자.”

아마도 교수 어쩌고 하는 걸로 봐서 동료이거나 상사인 듯한데 그 여성이 같이 식당에 왔었나 보다.

“좋은 거 대단한 거나 먹나 보지... 결혼은 했어?”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가지.”

남자의 한 마디가 하필 내 귀에 들어와 박혔다.

“몇 살인데?”

“마흔넷. 78이라던가.”

이후의 대화는 별로 적고 싶지 않다. 시집을 못 간 건지 안 간 건지, 나이도 정확하지 않은 그 여자의 ‘그러니까’가 대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그녀는 똥집처럼 잘근잘근 씹히고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거의 정해진 거래처와 일하니 내 소개를 따로 하거나 사적인 부분을 궁금해할 이유가 없었다. 퇴사를 하고 새로운 사람과 모임이 많아지면서 나는 인터뷰를 당하듯 질문을 받는다.

“실례지만 결혼은...” “아, 나이가 어떻게...” “결혼은 왜 안하셨...” “결혼 생각은 있으신...”

40대 정도의 이 나이에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남편과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내 삶을 신기하게 보는 이도 더러는 있었다. 물론 부럽다고 재미나게 잘 지내라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쉽게 던지는 질문과 도를 넘는 충고 같은 게 전에는 두려웠던 적도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되긴 했나 보다. 하지만 그럴수록 숨지 말고 더 다양한 자리에서 있는 힘껏 나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 나이에 나와 같은 싱글의 삶도 존재한다고, 당당한 사회 구성원의 일부임을 그들이 나를 보고 알았으면 한다. 당신이 당연하다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래서 이후에 더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나에게 뱉던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기를.


10대에는 공부하고, 짝사랑했다. 20대에는 공부하고, 일하고, 연애했다. 결혼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곧 결혼해서 엄마처럼 살 줄 알았다. 30대에 대부분의 친구가 또 후배들이 결혼했다. 다양한 결혼 생활을 듣고 보니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해댔다. 어서 시집가서 애 낳고 살아야 어른된다며 다양한 남자들에게 나를 선보였다. 여러 만남이 자기소개 다음을 넘어가지 못했고, 내 첫인상이 확실히 별로인 거라고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며 괴로운 시간도 보냈다. 여우 같은 마누라가 되어 토끼 같은 자식과 함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부르지 못하는 내가 세상의 왕따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퇴사 이후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어떤 날은 매일 밤 눕는 그 침대가 꼭 관 속에 혼자 들어가는 느낌이라 무섭다. 나만을 위해 끼니를 차리고, 안주도 만들며 언제까지 이런 삶이 계속될지 궁금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세상이 나를 따돌린다거나 내가 외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 스스로 나를 짓눌러 무겁고 아팠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누군가의 사모님이자 어머님이 아닌, 내 이름 세 글자로 불리는 지금이 좋다.

얼마 전 비혼주의자냐는 질문에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왜 이러고 사냐는 다음 물음에 ‘그냥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면, 내가 선택한 곳이 이어져 내 손과 발로 빚어진 지금의 길이 곧 나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산책하듯 거닐고 있는 오늘, 내 길이 행복하다.

‘그러니까’ 그녀가 시집을 가지 않은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그녀만의 길이 있는 거다. 함부로 길안내를 한답시고 아무나 불쑥 묻고 따질 필요는 없다. 각자의 길을 잘 가면 그뿐이다.





의식적으로 홀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진정한 선구자들이다. 모든 여성이 언젠가는 혼자 살게 될 것이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여성들은 같은 눈높이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만남과 자유로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두려움과 의심을 통과해야 하고, 장애물과 방해를 극복해야 한다. 또한 집단적으로 정체된 옛 아픔을 치유받아야 한다.
- 프란치스카 무리, <혼자가 좋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