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무 Apr 08. 2020

88 - 멜론과 작별하며


나의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누군가에게 공개할 때, 기분이 묘해진다. 좋아할지 궁금하고 영 아니면 어쩌나 싶고, 그만큼 음악은 개인의 취향+취향 저격의 영역이다. 각자 선호 장르나 아티스트, 곡의 전반적인 무드(분위기), 노래에 대한 추억까지 지극히 개별적인 체험이다. 동시대 히트송이 널리 회자되고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


무려 2005년에 가입했던 음원 서비스 ‘멜론’과 오늘 작별한다. 아쉬운 것은 그 세월 동안 내가 ‘좋아요’ 해두었던 앨범과 곡 리스트. 요 며칠 그 음악을 전부 다시 들으며 행복한 시간 여행을 마쳤다.




나는 14년간 음반 파는 일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피지컬 CD와 LP보다 사무실에서는 헤드폰으로 멜론을 끼고 살았다. 상품 구성 확인과 고객 문의 용도로 실제 앨범을 관리하기도 했지만, 정작 발매 전이나 당일에 제일 먼저 음원이 공개되니 멜론에서 들어볼 수밖에. 여러 주제별 기획전 준비로 음악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아마 수백, 수천 곡을 들었을 거다. 좋았던 것, 기억해 둘 것, 나중에 들을 것 등 멜론 리스트에는 내 개인사와 일터의 흔적이 한데 섞여 있었다.


아무도 몰라줘도 그러니까 하트 수가 거의 없어도 내 귀에는 최고였던 노래부터, 다시 들으니 이 곡은 왜 킵했을까 의심 가는 곡까지. 정말 지겹도록 리플레이했던 음반, 가사 때문에 눈물이 났던 곡도 소환되었다. 그 시절 한껏 빠졌던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 OST는 얼마나 반갑던지. 찜해 둔 인디 뮤지션이 최근까지 신보를 낸 뿌듯함, 명반이라 생각했던 팀이 비주류 장르의 벽을 넘지 못한 씁쓸함 또한 확인했다.


별생각 없이 계산을 해보았는데 그동안 매월 지불한 금액(일정기간은 회사 법인카드 결제)을 합치면 음반 100장도  사는 금액이다.  정도면 과연  이용한 걸까. 음악도 방송도 영화도 우리는 어마어마한 용량의 플랫폼에서 그저 ‘스트리밍  , ‘소유하지는 않는다. e-, 웹툰 같은 콘텐츠도 우리 눈을 스쳐 지나간다. ‘공수래공수거 완벽히 실행하는 삶인 걸까...


무덤에 CD 한 장 못 챙겨가지만, 감동은 남아있다 내 가슴에.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 왔듯 음악은 내 인생에서 계속될 것이니까! 멜론과는 이제 산뜻하게 작별한다. 그동안 고마웠다.

 




( + 나만의 명반을 소개 코멘트와 함께 남겨 본다. )



심성락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2009)   

  

한평생을 아코디언과 함께한 청춘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아코디언 세션 연주로 평생을 바친 심성락의 유일한 앨범이다. 십여 년간 가요 음반을 접한 내게 누군가 단 1장의 음반을 추천해달라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음악을 선택한다. 어느덧 80대 중반의 노신사가 된 그의 찬란한 청춘 같은 멜로디는, 바람처럼 당신의 인생 그 어느 날로 데려다줄 것이다. 발매된 지 10년, 훗날 국내 음악계에서 귀한 유물처럼 남아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87 - 식목일 아침의 다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